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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보경 조해영 기자] “옥바라지 골목이 협의를 통해 역사적 의미를 가진 곳을 살린 좋은 사례라고요? 사람과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파트가 지어졌고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작은 기념관 공사가 시작됐어요.”
지난 2016년 서대문형무소 인근의 옥바라지 골목 재개발 당시 마지막까지 남았던 구본장 여관을 운영하던 이길자(65)씨는 최근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의 재개발 갈등과 관련해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서울시는 23일 세운상가 정비사업을 도심전통산업과 노포(老鋪) 보존 측면에서 재검토하고 올해 말까지 관련 종합대책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박원순 시장이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전면 재검토 지시를 내린 후 일주일 만에 을지면옥, 양미옥 등 노포 보존과 공구상가가 밀집한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 사업추진 중단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골목은 없어지고 아파트 완공·기념관은 한켠에 공사중
박 시장은 앞서 재개발 문제와 관련 옥바라지 골목을 몇 차례 언급했다. 그는 “을지면옥 등 시민들 추억과 기억이 있는 곳은 보존하는 게 맞다”며 “과거 옥바라지 골목처럼 유의미한 곳은 살리겠다”고 말했다.
3년이 지난 현재 옥바라지 골목이 있던 곳은 경희궁 롯데캐슬 아파트가 완공돼 이달 입주를 앞두고 있다. 지난 21일 현장을 찾아보니 당시 약속했던 기념관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공사기간 동안 인근 주민들과 서울시민들에게 옥바라지 골목을 잊혀졌다. 현장 관계자는 한 켠에 공사중인 곳이 기념관 자리라고 했다. 지난 2일 공사를 시작해 3월 완공 예정이다. 기념관과 통로로 사용되는 건물 2채의 예상 합계 면적은 23평 정도다.
공사기간 3년간 골목 잊혀져…기념관과 보존은 달라
이씨는 “철거가 진행될 때 박 시장이 골목을 찾은 걸 보며 `재개발이 안 되겠구나` 생각했지만 결국 재개발이 되지 않았느냐”며 “재개발 과정에서 서울시에 요구했던 것들이 결과적으로는 절반도 진행되지 않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기념관을 만든다고 얘기를 했으면 아파트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같이 진행을 했어야지 아파트가 다 들어선 뒤 부랴부랴 세우면 이미 사람들에게 옥바라지 골목은 나중에 부수적으로 생긴 작은 기념관 정도로만 기억될 것”이라며 “지금 청계천은 옥바라지 골목처럼 되서는 안된다”고 토로했다.
옥바라지 골목과 청계천·을지로 일대에서 활동했던 한 활동가는 “옥바라지 골목 일부분이라도 남기자고 서울시에 얘기했지만 하나도 남김없이 다 부쉈다”며 “철거 과정이나 이유를 기록으로 남겨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 역시도 아무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서울시는 종묘처럼 왕이나 유명인 관련 유적은 열심히 지키면서 서민의 역사가 담긴 곳은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서울시 “생활유산 보존·연말 종합대책까지 개발 중단”
물론 지금 세운상가 일대와 옥바라지 골목은 상황이 좀 다르다. 10개의 구역으로 쪼개서 개발이 진행되는 만큼 재개발 진행 단계가 달라 서울시가 계획을 변경할 여지가 있다. 골목과 여관들을 없애고 ‘새로운 흔적’을 다시 짓는 옥바라지 골목의 전처를 밟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업지연으로 땅주인들과의 소송도 감내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이미 철거가 진행중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1·4·5 구역은 기존 계획대로 추진한다. 을지면옥 등이 속한 3-2·6·7구역은 2017년 4월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현재 보상 협의가 진행중이다. 공구상가가 밀집한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은 종합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사업추진 진행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 구역은 작년 12월 중구청에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한 상태다.
강맹훈 도시재생실장은 “을지면옥, 을지다방, 양미옥, 조선옥 등은 생활유산으로 지정돼 있다”며 “생활유산은 중구청과 협력해 강제로 철거되지 않도록 할 계획이며, 연말에 종합대책이 나올 때까지 이해관계자와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지연에 따른 땅주인들에 대한 보상책에 대해서는 “그분들이 소송도 할 수 있지만 그런 부분은 중구청과 공동 대응하면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