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지영의 기자] 규제 면제 혜택을 받기 위해 금융위원회 문을 두드렸던 조각투자 사업자들이 대거 고배를 마셨다. 조각투자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자 당국에서 문턱 높이기에 나선 모양새다. 당분간은 국내에서 조각투자를 중심으로 한 토큰증권(STO) 시장이 형성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무분별한 조각투자 확산 경계감...높아진 규제 면제 문턱2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최근 금융위원회가 개최한 금융규제 샌드박스 1차 심의에 올라온 36개 조각투자사업안 중 31곳이 탈락했다. 나머지 5개 안 마저도 추가 심의를 전제로 유보된 안이라, 승인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곳은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란 혁신적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현행 규제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특혜를 주는 제도다.
당국 문턱을 두드린 조각투자 사업안이 줄줄이 떨어져나간 데에는 금융위의 경계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적절한 조각투자업체가 무분별하게 늘어날 가능성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심사에 올라온 안들이 대체로 내부 규정 마련이 미비했던 데다, 사업 유형마저 ‘단순 유동화’에 그쳐 천편일률적이었기 때문이다. 투자자보호를 위한 구체적 설계 없이 단순히 매출채권 및 선박금융 등을 조각투자 형태로 쪼개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는 후문이다. 규제 면제 혜택을 받고, 시장에서 원활히 소화되지 않을 상품의 유통 경로를 하나 더 늘리려는 목적에서 마구잡이로 들이민 곳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조각투자 및 토큰증권(STO) 사업을 새 먹거리로 삼아 경쟁적으로 시장 선점에 나서려던 금융투자업자들의 행보에도 당분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현재 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KB증권·하나증권·신한투자증권 등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줄줄이 STO 유관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당국이 관련 사업을 신중히 들여다보는 기조가 지속될 전망이라 속도가 붙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예상보다 금융위가 규제 면제 문턱을 쉽게 열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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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X 유통시장 개설사업은 통과
조각투자사업자 안건들과 별개로, 이번 심의에서 조각투자 유관 사업 중 규제 샌드박스 1차 문턱을 넘어선 곳은 한국거래소의 조각투자 장내 유통시장 개설 사업 뿐이다. 현행법상 투자계약증권 상품은 주식처럼 발행(공모·청약)할 수 있지만 상장 절차를 거쳐 거래소나 증권사 플랫폼에서 유통(매매)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관련 규제 및 제도가 완전히 자리잡기 전까지 거래 플랫폼을 열려면 자본시장법 등과 충돌하지 않도록 현행 규제를 면제 받은 사업자가 필요하다. 거래소 사업안이 본위원회 의결을 거쳐 최종적으로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될 경우 투자계약증권과 비금전신탁수익증권으로 발행된 조각투자 상품에 한해 시장 유통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조각투자 유통을 위한 정식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사전 공감대가 높았던 부분”이라며 “공식적인 플랫폼도 없는 상황에서 조각투자가 무분별하게 늘어나면 곤란한 측면이 있다. 증권사 및 일반 사업자들이 신청한 안이 다 탈락한 데에도 이유가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