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트립 in 신영내 기자] 호젓한 산자락, 곱게 물든 단풍,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 비가 날리는 가을빛 머금은 산사로 여행을 떠난다. 생기 있었던 잎새도 긴 여름을 지나 가을임을 알고 가장 화려한 옷을 입는다. 한 템포 느린 걸음으로 쉼표 같은 하루를 가을로 채운다.
통일신라 헌안왕 3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수도암을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르기는 하나 아름드리나무가 줄지어 있어 입구부터 가을의 깊은 정취가 느껴진다. 대적광전의 석굴암 본존에 버금갈 정도로 우수한 비로자나불 좌상과 약광전의 석불좌상, 삼층 석탑 등의 보물을 보유하고 있는 암자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큰 절이다. 대적광전 뜨락에서 바라보는 가야산 연화봉은 마치 한 떨기 연꽃과 같다.
수도암에서 잠시 내려와 만나는 인현왕후 길은 지난 8월 문화체육 관광부와 한국 관광공사가 추천하는 ‘8월의 걷기 여행길’로 선정된 곳이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산한 그곳에는 떨어진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두 시간 정도 길게 이어지는 수도산 단풍길은 걷는 내내 낙엽 밟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고 알록달록 물든 울창한 숲이 눈을 즐겁게 한다. 길 입구와 출구의 비탈 이외에는 거의 평지로 이어져 산행이 어려운 사람이 가을을 느끼며 걷기 좋다. 인현왕후의 숨은 이야기를 되새기며, 지친 마음은 자연 속에서 정화된다.
숨겨진 비경을 간직한 청정도량 청암사
인현왕후 길로 통하는 청암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학하는 청정도량이다. 폐위된 인현왕후가 3년간 은거하며 기도한 곳이다. 입구에서 보았던 작은 폭포에서의 느낌 그대로 맑고 아담한 절이다. 청암사는 직지사의 말사로 비구니 승가대학까지 갖추고 있다. 치열한 당쟁 속에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인현왕후가 기거한 극락전의 운치 있는 한옥의 모습은 사찰과도 잘 어울린다.
어느 계절보다도 빨리 가버리는 가을, 단풍으로 곱게 물든 산사의 여정은 팍팍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을 만큼 아름답고, 무디었던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 마법 같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