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공정거래 규제, 형벌규정 지나쳐…글로벌 스탠더드 맞춰야"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답을 찾다] 공정경쟁정책 ④
지철호 前 공정위 부위원장 "행정제재 중심돼야"
"무분별한 수사기관 개입…경제활동 위축 우려"
"담합·부당지원·내부거래 제외 형벌규정 정비해야"
  • 등록 2022-05-09 오후 7:29:36

    수정 2022-05-10 오전 9:54:37

[세종=이데일리 공지유 기자] “우리 공정거래법은 형벌 규정이 지나치게 많아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는 법 취지에 맞지 않습니다. 행정제재 중심 법 집행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형벌 규정을 정비해야 합니다.”

지철호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9일 이데일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로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30여년 간 공직생활을 마치고 2020년 8월 퇴임한 지 전 부위원장은 퇴임 이후에도 한국 공정거래법의 지나친 형사처벌과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명해 왔다.

지철호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사진=방인권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독일을 포함한 16개 나라는 독점규제법 위반 행위에 형사벌칙 규정이 없다.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에서는 담합에 대해서만 형벌 규정을 적용한다. 미국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도 형벌 규정이 있지만, 미국 법무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원칙적으로 기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지 전 부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 제도를 모델로 공정거래법을 설계하면서 대부분 행위에 형벌 규정을 도입했다”면서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일반 불공정거래행위에도 형벌을 두면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형벌 규정을 많이 도입한 국가가 돼 버렸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일본과 우리나라에는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개입을 막기 위해 담합(카르텔) 등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등 위반사건에 대해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게 한 전속고발권 제도가 도입돼 있다.

한국의 경우 2020년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때 기업 결합과 일부 불공정행위 등에 대한 형벌 규정은 삭제됐지만 여전히 광범위한 형벌 규정으로 무분별한 형사개입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 전 부위원장은 “공정거래법은 제재가 아니라 자유로운 경쟁 촉진과 창의적 기업 활동을 조장하는 게 목적”이라면서 “그런데 형사처벌을 하는 등 수사기관이 개입하려고 하면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다른 나라에서 공정거래법 또는 독점규제법 집행기관을 별도로 두는 걸 보면 일반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에서 처리해야 될 일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라며 “법 위반에 대해 행정제재를 하고 이를 불이행했을 때 형벌을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담합 등 주요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을 제외하고는 형벌 규정을 삭제하는 등 법 정비가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지 전 부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재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담합에 더해 부당 내부거래나 부당지원행위 정도에만 형벌 규정을 두는 게 타당하다”면서 “공정거래법이 아니라 가맹사업법·대리점법 등에 있는 형벌 규정도 다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 전 부위원장은 공정거래법 제재가 행정조치 중심으로 넘어갈 경우 궁극적으로 전속고발권 폐지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공정거래법에서 형벌 규정이 정비된다면 형벌 부과를 못 하니까 전속고발권도 불필요하다”면서 “그러나 형사처벌 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폐지를 할 경우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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