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철호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9일 이데일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로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30여년 간 공직생활을 마치고 2020년 8월 퇴임한 지 전 부위원장은 퇴임 이후에도 한국 공정거래법의 지나친 형사처벌과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명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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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독일을 포함한 16개 나라는 독점규제법 위반 행위에 형사벌칙 규정이 없다.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에서는 담합에 대해서만 형벌 규정을 적용한다. 미국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도 형벌 규정이 있지만, 미국 법무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원칙적으로 기소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2020년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때 기업 결합과 일부 불공정행위 등에 대한 형벌 규정은 삭제됐지만 여전히 광범위한 형벌 규정으로 무분별한 형사개입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 전 부위원장은 “공정거래법은 제재가 아니라 자유로운 경쟁 촉진과 창의적 기업 활동을 조장하는 게 목적”이라면서 “그런데 형사처벌을 하는 등 수사기관이 개입하려고 하면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다른 나라에서 공정거래법 또는 독점규제법 집행기관을 별도로 두는 걸 보면 일반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에서 처리해야 될 일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라며 “법 위반에 대해 행정제재를 하고 이를 불이행했을 때 형벌을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 전 부위원장은 공정거래법 제재가 행정조치 중심으로 넘어갈 경우 궁극적으로 전속고발권 폐지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공정거래법에서 형벌 규정이 정비된다면 형벌 부과를 못 하니까 전속고발권도 불필요하다”면서 “그러나 형사처벌 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폐지를 할 경우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