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포비아에 빠진 대한민국…식약처 "생리대 유해성 없다" 공식 발표

  • 등록 2017-09-28 오후 3:41:51

    수정 2017-09-28 오후 3:49:24

생리대의 휘발성유기화합물을 측정하고 있는 식약처 직원.(사진=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한 달동안 지속된 생리대 속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의 유해성 논란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8일 “검출된 VOCs 양이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낮은 수준”이라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식약처가 이번에 분석한 VOCs는 전체 84종 중 10종 뿐이다. 식약처는 생식독성이나 유해성이 큰 물질 순서로 10개를 추렸다는 입장이지만 나머지 74종의 안전성이 완벽히 밝혀진 게 아니어서 미완의 결과라는 지적이다. 식약처는 올해 말까지 나머지 74종의 VOCs에 대해 전수조사 및 위해평가를 실시해 결과를 공개하고 농약 등 기타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내년 5월까지 검사를 끝낼 예정이다. 환경부, 질병관리본부 등과 협력해 생리대 부작용에 대한 역학조사도 추진할 방침이다. 식약처는 이날 “생리대 유해성분 논란으로 불안을 끼쳐 죄송하다”며 “모든 성분에 대한 위해평가 결과를 종합해서 발표해야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일단 위해성이 높은 성분부터 평가결과를 발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멀게는 가습기 살균제부터 가까이는 살충제 검출 계란과 이번 생리대 VOCs까지 각종 유해화학물질 안전성 논란이 반복되면서 우리 사회에 ‘케미포비아(생활화학제품 공포증)’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생활필수품인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해야 하는 소비자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고 관련 업체들은 애꿎은 피해를 입어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다. 실제 생리대 안전성 논란이 제기되자 ‘릴리안’ 제조사인 깨끗한나라는 소비자 불안감 해소를 위해 전량 환불을 결정했다. 지난해 매출 7000억원을 올린 이 회사는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후 국산 생리대 불매운동이 번지면서 매출이 급감하고 소비자 3100명으로부터 집단 손해배상 소송까지 당했다. 깨끗한나라 관계자는 “피해액을 정확히 산정해 봐야 알 수 있지만 매출이 크게 줄어드는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소비자 불안감을 초기에 불식시켜야할 식약처는 제역할을 못하고 오히려 국민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식약처도 할 말은 있다. 전체 인력이 1800여명에 불과한 작은 조직이 수백만 종의 화학물을 비롯 식품, 의약품, 바이오, 의료기기, 화장품 안전성을 검증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한 식약처 관계자는 “이번 생리대 안전성 검증에 투입된 인력이 6명 뿐일 정도로 선진국에 비해 인력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내년부터는 일회용 위생용품의 안전까지 식약처가 맡는다. 김장열 식약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은 “45명 충원을 요청했지만 11명만 증원됐다”며 “일단 급한 대로 현재 업무의 우선순위를 다시 검토해 1회용품 관리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화학제품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을 만큼 앞으로 안전 문제는 지속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다”며 “식약처가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확실한 입장을 밝혀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오히려 논란을 부채질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케미포비아(Chemophobia)

생활화학 제품 사용을 꺼리거나 두려워하는 증상. 화학(Chemical)과 혐오(Phobia)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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