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7일(현지시간) 통과시킨 IRA 법안이 글로벌 전기차업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까지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방안이 담겼는데, 배터리 소재·부품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등 글로벌 전기차 기업들로선 사실상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아직 하원 통과와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 등 절차가 남아 있으나 하원은 이미 여권이 장악한 만큼 IRA 법안의 내년 발효는 시간문제라는 게 글로벌 업계의 시각이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수출 통제 당시 예외를 두는 등 미 정부는 통상 강력한 제재법안을 내놓고 동맹국에 대해선 관대함을 베풀었던 게 관례였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는 뾰족한 묘수를 둬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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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께 하원으로 가 표결에 부쳐질 예정인 IRA 법안의 골자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전기차 구매 때 세액을 공제해 주겠다는 거다. 예컨대 새 전기차를 사는 소비자에게 7500달러(약 980만원), 중고 전기차를 사는 저소득·중산층에겐 4000달러(약 520만원)를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표면적으론 북미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를 확대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수혜를 입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제 혜택을 받는 조건이 무척 까다롭다. 당장 미국에서만 차량을 만들어야 한다. 또 배터리 부품과 그 원재료를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 즉 동맹국에서 일정 부분 조달해야 한다. 이 비율은 2024년 40%부터 시작해 2026년에는 80%까지 늘어나며, 궁극적으로 2028년 100%까지 확대된다.
실제로 이 법안이 예상대로 내년부터 발효할 경우 현대차와 기아의 주력 전기차인 아이오닉5와 EV6는 내년부터 당장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6조3000억원을 투입, 연간 30만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기지를 미국 조지아주(州)에 짓기로 발표했지만, 완공은 2025년에나 가능하다. 오는 11월부터 제네시스 브랜드의 전기차 GV70 EV를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지만 럭셔리 모델인 만큼 판매량 증대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기아 역시 미국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지을 계획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으로선 중국 부품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공급망 재편 등에 나서야 한다”며 “위기에 위기가 겹친 형국”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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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선 우리 정부가 미 행정부를 상대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올해 3월 미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수출 통제를 위해 시행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추진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과 협의를 거쳐 휴대전화와 자동차, 세탁기 등 소비재의 경우 예외를 두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당시 이들 제품을 수출해오던 삼성전자·LG전자와 현대차그룹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른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칩4 동맹’ 가입 등 미국의 요구조건을 들어두는 대신, IRA 법안의 직격탄에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안점을 둔 외교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