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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기준 베이루트 폭발 사고로 숨진 희생자 수는 최소 135명, 부상자는 5000명에 달한다. 이재민은 30만명을 넘어섰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환자들이 많은데다 정확한 집계가 이뤄지지 않아 사상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레바논 정부가 폭발 원인 규명에 집중하는 가운데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유력해지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경기 최악인데…폭발로 엎친 데 덮쳐
대규모 폭발사고로 인한 베이루트의 직·간접적 피해액은 최대 150억달러(한화 약 17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마완 압부드 베이루트 주지사는 5일 현지언론 알하다스와의 인터뷰에서 “베이루트 폭발로 피해액은 100억~150억달러(한화 약 17조7885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사망자를 수십명 수준으로 추정했을 당시 30억~50억달러(5조9295억원)에서 피해 규모가 3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취약한 레바논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레바논은 이미 수십년간 이어져 온 내전과 정치불안, 테러 등에 몸살을 앓아왔으며 오랜 기간 부패와 잘못된 국정운영으로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 놓였다. 국가부채율은 157.81%로 전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높다. 화폐가치는 지난 10개월간 약 80% 추락했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11월 레바논 인구 절반이 빈곤선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레바논 정부는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3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긴급 구제금융 협상을 벌여왔지만 지난달 결렬됐다. IMF는 올해 레바논 경제가 마이너스(-)12% 역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레바논 최대 무역항인 베이루트항이 파괴됨에 따라 외부 원조물자조차 공급이 어려워졌고, 그나마도 세계은행이 복구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6개월 전 경고에도…“정부는 뭐 했나” 분노
레바논 정부가 피해를 입은 시민들에게 물과 식량, 피난처를 공급하는 한편 사고 책임자들을 집중 조사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정부로 향하고 있다. 폭발 원인이 6년간 항구에 방치돼 있던 2750톤의 질산암모늄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사실상 ‘인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CNN은 자체 입수한 레바논 정부문서에서 사고 6개월 전 질산암모늄을 옮기지 않으면 베이루트 전체가 폭파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고 전했다. 질산암모늄은 지난 2013년 러시아 선박을 통해 처음 들어왔는데, 선박운영 위반과 항구수수료 미지급 등의 문제로 방치되다 2014년 11월 베이루트 번화가에 인접한 창고에 보관돼왔다. 이후 레바논 세관당국이 이를 처리하기 위해 베이루트 법원에 다섯 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사법당국이 이를 방치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부정부패에 시달려온 국민들은 한목소리로 현 정부와 정치인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레바논 최고국방위원회가 질산암모늄 관리 책임자들을 조사하는 한편 모든 항구 직원들을 가택연금하도록 했지만 역부족이다. 베이루트의 한 호텔 지배인인 하산 자이터는 CNBC 인터뷰에서 “이 폭발은 레바논의 붕괴를 나타낸다. 지도부는 비난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번 폭발 사고의 원인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테러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말을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군 장성들의 판단을 근거로 들며 폭발을 “끔찍한 공격”으로 규정했다가 하루 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모른다. 지금은 아무도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미 국방부의 한 관료는 “테러 징후가 있었다면 무력 증강이 자동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움직임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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