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정부가 비급여 억제를 위해 ‘병행진료 금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비급여진료와 급여진료를 함께 받을 때 건강보험 급여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비보험병원이 탄생할 것이란 가능성이 점쳐진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응급진료부터 암, 가벼운 증상의 감기까지 병행진료를 하는 병원이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9일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공개한 병행진료 금지 방안은 정부가 비급여 끼워 넣기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정책이다. 현재 병원에 감기 환자가 진료받고 도수치료까지 치료적 목적으로 받을 때 진료비는 건강보험이, 도수치료는 실손보험이 보장해 준다. 만약 병행진료가 금지되면 도수치료를 받을 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모든 진료비가 비급여로 적용된다. 환자가 적은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남용하는 행태를 줄이고 의료진이 매출 증가를 목적으로 유효성이 떨어지는 진료를 끼워 넣지 않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지난 9일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정책토론회’(사진=안치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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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병원이 의도적으로 병행진료를 하는 경우다. 병원이 환자에게 진료했을 때 급여 항목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적정한지를 심사한다. 반면 비급여는 심사평가원의 심사를 거치지 않는다. 병행진료를 했을 때 급여와 비급여 모두 심사평가원에서 심사할 수 없다. 만약 어떤 병원에서 응급환자든, 수술환자든 간에 도수치료를 끼워 넣는다면 그 병원은 모든 진료행위에 대해 심사평가원의 심사를 거치지 않게 된다.
이는 병원이 건강보험 체계에서 빠져나갈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모든 의료기관은 법적으로 심사평가원 통제 속에 국민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하고 국가가 정한 진료비를 받아야 한다. 이를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또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라고 말하는데 전 국민 의료접근성 보장과 보편적 의료서비스 확립, 의료비 억제 효과 등의 장점이 있다.
병원 측은 병행진료를 꼼수로 이용해 당연지정제를 회피하면서 환자는 사실상 골라 받을 수 있다. 지불 능력이 있는 환자만을 받으며 가격이 정해지지 않은 비급여 항목을 비싸게 받고 환자 한 명당 매출을 극대화한다. 부유층은 응급환자부터 암 환자, 가벼운 증상의 감기까지 병행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멤버십’ 형태로 이용한다. 환자를 골라 받기 때문에 응급실 뺑뺑이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수술부터 재활까지 원스톱으로 진행된다. 사실상 미국 영리병원과 비슷한 모델이다. 국민건강보험(NHS)이 잘 갖춰진 영국 또한 영리병원이 있으며 NHS 병원 대비 진료비 갑절 이상 비싸다.
영리병원의 도래는 건강보험을 지탱하는 고소득자의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 지난 2023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건강보험료 납부 상위 5% 적용 인구는 373만 4608명(146만 2887세대)이다. 이들은 세대당 최대 월 391만 1280원, 평균 월 54만 9899원의 건강보험료를 낸다. 반면 1인당 경상의료비는 이에 못 미친다. 2022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보건계정 보고서’에서 2022년 전체 경상의료비는 203조 9000억원으로 국민 1인당 연간 489만 2000원이었다. 이마저도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경상의료비는 이 금액의 약 60~70% 수준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비급여를 통제하기보다 의료진이 급여 진료에 대한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 충분한 급여 진료 유인책을 마련, 비급여 진료에 대한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게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사회적으로 의사에 대한 존경심이 떨어지고 저수가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의사가 많다”면서 “요즘 인기 진료과에 지원하는 전공의 중 일부는 개원하자마자 비급여로 빠르게 돈 벌고 40대에 은퇴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필수의료와 표준진료지침을 지켜가며 진료하는 의사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끔 명예 회복과 적정한 수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