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302개동을 1명이 검사" 보여주기式 국가안전대진단

세월호 사건 계기로 2015년부터 실시
감사원 감사결과…"지적률도 예방효과도 떨어져"
  • 등록 2020-07-23 오후 4:18:39

    수정 2020-07-23 오후 9:13:57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2019년 2월 서울특별시 성동구가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한 국가안전대진단. 건축·전기·가스·소방·승강기 등 7개 분야에 대해 표준점검표를 바탕으로 점검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실제 점검 과정은 관리사무소 직원의 자체 점검에 공무원 1명이 참관한 것에 불과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성동구는 6~9급 직원 5명들이 740개동을 나눠 점검한다는 계획을 세웠는 실행 과정에서 점검대상이 축소됐을 뿐만 아니라 9급 공무원에게 일이 몰렸다. 결국 9급 직원 1명이 21일 점검 기간동안 하루 평균 14.4개동, 하루 최대 47개 동, 총 302개 동의 아파트를 혼자 점검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직원은 점검 실시일로 보고한 기간 중 10일간을 실제 현장에 나가지 않았음에도 67개 동의 아파트를 점검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이같은 일이 발생했던 것은 비단 이 직원이 게을러서만이 아니다. 과도한 업무가 한 사람에게 쏠린 데다 기존 업무까지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23일 지난해 11월 18일부터 12월 20일까지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 소방청 등을 대상으로 한 ‘국가안전대진단 사업 추진실태’를 감사한 결과 실적 채우기에 급급해 보여주기식 검사가 이뤄지는 등 사업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22일 서울 강남구청역 분당선 역사에서 국가안전대진단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대진단 받은 병원에서 이듬해 대규모 화재 사건

국가안전진단은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2015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2월부터 4월까지 국가 대대적으로 실실하는 안전점검활동이다.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민간전문가 등이 함께 전국의 공공주택, 학교, 식품, 위생 관련 업소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시설과 도로, 철도, 에너지 관련 시설 등 주요 사회기반시설을 점검한다. 5년 동안 연인원 264만명이 참여해 총 240만여개소를 점검하고 이 중 18만여개소에 대해서는 보수·보강 조치가 실시됐다.

그러나 2017년 3월 대진단을 실시한 경상남도 밀양시 세종병원이 이듬해 1월 화재에서 스프링클러 미설치, 방화구획 미확보로 19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2018년 3월 대진단 실시한 서울 강남구 빌딩은 같은 해 11월 건물 붕괴 위험이 뒤늦게 발견돼 모든 입주민이 퇴거하기도 했다.

지적사항이 1건이라도 있었던 시설 비율(지적률)도 국가안전대진단은 9.5%인 반면 소방청이 비슷한 목적으로 실시하는 화재안전특별조사는 56.4%로 크게 낮았다. 실제 감사원이 2019년 대진단을 실시한 시설 중 6개를 임의로 선정해 다시 한번 점검해보자, 2019년 3월 점검한 대진단에서는 ‘적합하다’고 판정된 사항이 중대 위반사항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사고 예방 효과도 상대적으로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점검 후 1년 이내 화재가 발생한 시설 비율을 비교해 보면 화재안전특별조사가 0.28%인 반면, 국가안전대진단은 0.95%로 높았다.

5년 지났는데 세부점검 항목·기준 미흡

이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미흡한 추진체계가 지목된다.

법정 점검이나 화재안전특별조사의 경우, 개별 법령을 통해 공공과 민간의 시설물 관리주체, 국가·공공에 각각 점검과 사후 관리·감독 책임을 명확하게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안전대진단의 경우, 지난해 12월이 돼서야 법적 추진 근거가 마련됐다. 또 아직까지도 세부점검 항목·기준 등은 여전히 마련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점검자의 책임과 시설물 관리 주체의 의무는 여전히 법적으로 부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예산과 인력 역시 부족하다. 사업예산 전체를 확보한 화재안전특별조사와 달리 국가안전대진단은 전체 사업비의 45%에 불과해 부족한 사업비는 지자체 등 점검 기관의 자체 예산으로 충당해야 한다.

또 앞서 성동구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공무원들이 기존 업무를 하면서 동시에 점검도 같이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적이고 자세한 점검이 어렵다.

감사원은 “점검 담당 공무원 1명이 아파트 관리소 직원과 함께 하루에 64개 동, 4308세대 아파트를 점검하는 사레도 발생했다”며 “2019년 대진단의 석면관련 지적사항 136건 중 92.7%는 잘못된 지적사항이었다”고 설명했다.

점검 대상 선정도 점검기관인 지자체에 일임하고, 점검방식도 단독 또는 자체점검이 48.6%에 달하는 등 점검 신뢰성도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행안부가 안전분야에 있어서 국민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도입한 안전신문고의 신고·처리 실적을 2017년부터 2017년부터 시·도 소방안전교부세 교부기준에 반영하자, 일주 지자체에서는 공무원이 신문고에 올린 후, 본인이나 동료가 처리하는 ‘셀프신문’도 이뤄졌다.

이 중 5개 시·군·구 공무원 11명은 우수 신고자 포상금을 지급받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사후 관리 역시 부실했다. 국가안전대진단 관리시스템이 2016년 3월에서야 구축되면서 과거 2015~2016년 점검이 이뤄진 점검 정보는 남아있지 않고, 이후에도 세부 주소를 일일히 본인이 입력하도록 해 3분의 1에 달하는 시설이 어떤 시설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또 2017년~2018년 정밀안전진단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받은 시설물 676개 소 중 172개 소(25.4%)는 현재까지 정밀안전지단이 실시되지 않았다.

감사원은 이같은 감사결과를 토대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매년 유사한 분야를 반복 점검하는 현행 방식에서 벗어나 각종 사고나 재난 발생이 우려되는 시설을 중심으로 점검대상을 체계적으로 선정하도록 했다.

또 시설 유형별 점검 기준과 방법을 명확히 정해 점검 품질을 관리하고, 점검 결과에 대한 평가와 환류,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는 등 국가안전대진단 추진 체계 전반을 개선하도록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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