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봇 아닌 피봇 같은…'추가 금리 인상' 닫았지만 상반기 인하도 없다

한은 새해 첫 금통위, 기준금리 3.5% 동결
석 달 내 추가 인상 전망한 위원 4명서 '0명'으로
이창용 "6개월 이상 금리 인하 쉽지 않다"
"금리 내려도 부동산 가격 올라선 안 돼"
가계 초과저축 100조 넘어…'금리 인하' 딱 하나 기다린다
  • 등록 2024-01-11 오후 4:49:20

    수정 2024-01-11 오후 7:24:43

[이데일리 최정희 하상렬 유준하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앞으로 6개월 이상은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닫음과 동시에 상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도 닫아버렸다. 이 총재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차단한 이유는 금리를 인하할 경우 부동산 가격이 오를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각종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상황에서 딱 하나 남은 ‘금리 인하’까지 이뤄지면 시중에 떠도는 자금이 대출과 맞물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불을 지필 것을 우려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1월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머리발언을 하다 얼굴을 만지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추가 금리 인상도, 상반기 금리 인하도 없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새해 첫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에서 동결했다. 작년 2월에 이어 8회 연속 금리 동결이다.

이날 금통위의 핵심 메시지는 ‘6개월 이상 금리 동결’이다. 금통위는 1월 통화정책방향에서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을 판단한다’는 문구을 1년 만에 삭제했다. 구두 포워드가이던스(forward guidance·선제적 안내)로 금통위원 중 석 달 내 추가 금리 인상을 열어두자는 위원이 작년 11월 4명에서 0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이 총재는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를 차단했다. 통방에 ‘통화정책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유지한다’는 문구를 그대로 유지한데다 이 기간을 두고 이 총재는 사견임을 전제로 “6개월 이상은 금리 인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금통위원들도 금리 인하 논의를 시기상조로 본다”고 덧붙였다.

금리 인하 기대를 차단한 가장 큰 이유는 빚투(빚을 내 투자)·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로 주택 가격 급등과 가계빚 급증이 재발할 위험 때문이다. 이 총재는 “섣불리 금리 인하에 나설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하면서 물가상승률이 다시 높아질 수 있고, 현 상황에선 금리 인하가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밝혔다.

왜 그럴까. 한은이 작년 7월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가계에 축적된 초과저축 규모는 101~129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초과저축은 유동성이 높은 금융자산으로 축적돼 있어 여건 변화에 따라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다”며 “주택 가격 상승, 가계대출 감축 지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단기부동자금(현금, 결제성 예금, 만기 1년 이하 단기저축예금 및 단기채권 등) 규모는 작년 9월말 1790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1년 전보다 8.4%, 138조5000억원 급증하는 등 증가세가 둔화되지 않고 있다. 부동산 자금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하지만 주식 관련 신용융자도 작년 11월초 16조5700억원으로 줄었다가 주요국 금리 인하 기대에 이달 9일 18조원으로 두 달여만 1조5000억원 가량 늘어나는 등 투자심리는 금리 인하를 기다리며 다시 꿈틀거릴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이 총재는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가계부채 증감에 중요한데 고금리 기조를 장기간 가져가면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지 않도록 기대를 줄이는 게 맞다”며 “가계부채가 중장기적으로 적어도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90% 미만으로 떨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정부는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가장 손쉬운 부동산 부양으로 해결해왔는데 만약 이번 정부에서 가계부채 비율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칭찬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가에 대해서도 “생활물가가 소비자 물가상승률보다 평균 0.7%포인트 더 높아 물가상승률이 3% 미만으로 내려가더라도 국민들이 느끼는 물가는 4% 수준이기 때문에 물가는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으로 번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에 대해선 한은이 나설 단계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는 “태영건설은 자기자본 대비 PF가 다른 건설사보다 굉장히 높아 위험 관리가 잘못된 대표적인 사례”라며 “한은은 특정 산업, 특정 기업의 위기에 대응하지 않고 시장 충격이 왔을 때 정책 대응을 하는데 한은이 나설 상황이 아니다”고 잘라말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3분기 금리 인하 무게 커져

이 총재의 금리 인하 기대 차단에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 시점을 2분기보다 3분기에 더 두는 모습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이르면 2분기부터 기준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3분기 인하 개시로 조정한다”고 말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부동산PF 불안시 미시적, 한시적 대응으로 방침을 정한 만큼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은 3분기로 지연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국고채 금리는 통방 문구에서 ‘추가 금리 인상 판단’이 삭제되자 2bp(1bp=0.01%포인트) 하락에서 4bp 하락으로 하락폭이 확대됐지만 이 총재가 ‘6개월 이상 금리 인하 없다’고 밝히자 다시 하락폭을 1bp로 축소했다. 그러나 금리 인하 기대는 여전하다. 선도금리는 6개월 뒤 기준금리가 25bp 인하될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에 지표금리인 국고채 3년물 금리 최종 호가는 3.227%로 전 거래일보다 4.2bp 하락했다. 한 달 넘게 기준금리보다 낮은 상황이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위원은 “금통위원 전원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닫은 것은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를 크게 부정하지 않은 제스처”라며 “물가가 기조적으로 둔화되는 가운데 경기, 금융안정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어 한은은 2분기에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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