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경제정책연구소 두성규 대표] 전셋값 급락으로 새로 세입자를 들여도 집주인이 추가로 돈을 보태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역전세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올 하반기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서울 아파트 10채 중 4채는 역전세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역전세난이 확산한다면 보증금 반환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이 도미노처럼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올해 역전세에 따른 전세 보증 사고 금액도 1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전세금 반환보증 사고액은 1조83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사고액이 1조 1726억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증가세가 가파르다.
|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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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 만기가 됐는데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세입자가 임차인 등기 명령을 신청한 건수도 지난 3월과 4월 두 달 연속 3000건을 넘어섰다. 이 같은 신청 규모는 이례적이다. 기본적으로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받은 보증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계약 만료 때 돌려줘야 한다. 여유 현금이 없다면 보증금 반환을 위해 대출이라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세입자를 둔 집주인은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쉽지 않다. 소득이 낮거나 없는 집주인은 소득 기준으로 대출을 제한하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때문에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임대차시장 안정을 위해서라도 ‘전세보증금반환 차액 대출’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한 이유다.
전세사기와 역전세 이슈가 불거지면서 전세폐지론에도 불이 붙고 있다.
주택정책을 총괄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16일 전세 제도 개편 방안 중 하나로 전세보증금 에스크로 계좌 도입 검토 가능성을 밝혔다. 원 장관은 “수명을 다한 전세 제도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보증금 에스크로 예치 도입, 임대차 3법 등 전반적인 제도 개편을 예고했다.
전세제도는 자본이 부족하던 고도성장기에 주택보유자의 사금융 역할을 담당했다. 집값이 많이 오르면 집주인에게 유리하지만 세입자로서도 나쁠 것이 없다. 전세는 보증금만 내면 다른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차 제도다. 보증금을 대출받지 않는 세입자는 주거비 부담이 ‘0원’이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활용해 온 제도를 인위적으로 급하게 바꾸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등의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전세사기 등 전·월세 시장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은 모두 전 정부 시절의 졸속입법이 몰고 온 후유증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전세사기 문제와 전세제도 개편은 구분해야 한다. 전세사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기피해자를 구제하고 전세사기를 막는데 역점을 둬야지 전세제도의 존속에 영향을 미칠 제도적 변화를 정부가 주도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집값 변동엔 빈곤층이 더 취약하다. 전세제도는 집값 하락의 위험을 집주인이 떠안고 저렴한 주거비용으로 주거공간을 세입자에게 제공해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전세사기는 막아야 하지만 전세제도 존폐에 영향을 줄 정도의 제도변화에는 신중해야 한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국토부 중앙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 △한국부동산융복합학회 학술부회장 △전 한국집합건물법학회 부회장 △주거복지포럼 상임집행위원 △국민의힘 민생119 부동산·금융민생분과위원
|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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