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메달을 따고도 "금메달을 못 따 국민들께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리던 과거 선배들과 달리 이들은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전세계에서 모인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는 경기 그 자체를 즐긴다.
올림픽이 국가간 메달 경쟁이 아닌 국제 사회의 화합의 장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모습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지난 2016 리우 올림픽 레슬링 국가대표 김현우 선수는 그레코로만형 75kg급에서 동메달에 그치자 그는 "금메달을 기다렸을 가족과 국민에게 보답을 못 해서 죄송하다"며 업드려 눈물을 보였다.
여자 유도 48kg 정보경 선수 역시 은메달을 따고도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시 정 선수는 "여자 유도 첫 주자로서 금메달로 시작하고 싶었는데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최선 다한 기록 경신에 만족"..메달 경쟁 압박서 벗어나
5년이 지난 지금,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Z세대는 다르다. 이들은 노메달에 그쳐도 실망하기보다는 향상된 기량에 만족하고 경기 자체를 즐긴다.
한국 높이뛰기 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 높이뛰기 4위를 기록한 우상혁(25)은 내내 환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했다.
우 선수는 메달권에 근접한 4위에 그쳤음에도 아쉬워 하기보다는 한국 신기록을 경신한 데 더 큰 의미를 뒀다.
그는 인터뷰에서 "올림픽에서 4cm를 깬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라며 "진짜 후회 없이 뛰었다. 행복하다"고 했다.
여자 25미터 권총 은메달리스트인 김민정 선수 (24)는 "슛오프 들어갈 때 저 살짝 웃었어요. 재밌어서"라는 답변으로 넘치는 담력을 과시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은메달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전 아직 어리니까 다음이 있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한국 올림픽 최초로 하계 올림픽 금메달 3관왕에 오른 안산(20)도 4강과 결승에서 모두 슛오프까지 가는 피말리는 끝장승부를 펼쳤다.
그러나 결승전 슛오프 때 무슨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쫄지 말고 대충 쏴'라고 생각했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뉴 마린보이' 황선우는 200m 결승전 후 인터뷰에서 150m 구간까지 줄곧 1위를 유지하며 금메달 가능성을 키웠다. 그러나 막판 50m에서 뒤처지며 7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그는 메달을 따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 보다는 최선을 다해 기량을 펼쳤다는 것에 대해 더 큰 의미를 부였다.
황 선수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마지막 50m는 너무 힘들어서 정신없이 했다"며 "49초대에 턴한 걸로 만족할래요"라고 웃어보였다.
모든 경기를 마친 뒤에는 "후회 없는 경기였다" "(스스로 평가하기에) 100점 만점에 130점"이라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Z세대 선수들은 메달이나 순위의 언급 없이 스스로의 만족감이나 아쉬움을 편하게 드러낸다. '금메달 지상주의'라는 별칭이 붙었던 한국 스포츠계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은 고무적이란 평가다.
전문가 "Z세대 평가보다는 자신의 성취에 집중"
우리나라는 그동안 스포츠 활동을 순위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Z세대는 자신의 기록 갱신 등 성취에 집중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올림픽을 국가간 경쟁으로 생각하고 국위선양의 짐을 떠앉았던 지난 세대와 다르게 지금 세대는 그런 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 올림픽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본다" 라고 풀이했다.
이어 "최선을 다한 과정에 집중하고 성취를 받아들이는 Z세대의 특징이 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즉 Z세대가 점점 더 사회에 진출할수록 정치경제사회 분야에서 이런 특성이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체육철학자인 김정효 박사(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강사)는 "(스포츠를 통해) 조국과 민족의 영광을 찾기보다 개인의 탁월성에 주목하는 현상은 명백하다"며 "Z세대에게 놀라운 것은 경쟁을 즐길 줄 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이런 Z세대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가 개인종목이라고 설명했다.
개인 종목은 단체종목에 비해 집단적 가치가 개입할 여지가 적어 자신이 만족할 수준을 스스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박사는 "Z세대는 다양하게 스포츠를 즐기는 세대의 출현을 알리는 뚜렷한 징후"라며 "구체적으로는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박수를 쳐주고, 가능성이 보인 어린 선수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꼭 이겼으면 하는 시합에서는 꼭 이기기를 바라는 심정들이 공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올림픽은 스포츠를 즐기는 태도 혹은 시선이 다양화해 가고 있고 앞으로도 이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스냅타임 이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