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쁜 엄마" 오열했던 중증장애 딸 살해 母, 선처받은 이유

  • 등록 2023-01-19 오후 6:51:04

    수정 2023-01-19 오후 6:51:04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38년 동안 돌보던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60대 어머니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인천지방법원 형사14부(류경진 부장판사)는 19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A(64)씨에게 실형이 아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수면제를 먹여 30대 딸을 살해한 혐의로 A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이번 사건도 양형 기준상 권고형이 징역 4~6년이지만, 재판부는 이보다 낮은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도 하지 않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A 씨는 지난해 5월 23일 오후 4시 30분께 인천시 연수구 한 아파트에서 딸 B(사망 당시 38세)씨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인 뒤 살해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A씨는 범행 이후 자신도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6시간 뒤 아파트를 찾아온 아들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B씨는 뇌병변 1급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갖고 있었고, 사건 발생 4개월 전인 지난해 1월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생계를 위해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남편과 떨어져 지내던 A씨는 38년간 대소변을 받는 등 B씨를 돌보던 중 이러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38년간 돌본 중증 장애 딸 살해한 어머니 (사진=연합뉴스)
A씨는 지난달 8일 결심 공판에서 울음을 쏟아내며 “제가 이 나이에 무슨 부귀와 행복을 누리겠다고 제 딸을 죽였겠는가”라며 “같이 갔어야 했는데 혼자 살아남아 정말 미안하다. 나쁜 엄마 맞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도 “(범행) 당시에는 버틸 힘도 없었다”며 “‘여기서 끝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고.

A씨의 아들이자 B씨의 남동생은 지난해 12월 6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어머니는 다른 엄마들처럼 항상 누나 머리도 예쁘게 땋아주고 예쁜 옷만 입혀서 키웠다”며 “대소변 냄새가 날까 봐 깨끗하게 닦아 주는 일도 어머니가 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누나의) 혈소판 수치가 감소하면서 항암마저 중단했고 몸에 멍이 들기 시작하면서 더는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그는 또 “누나도 불쌍하고 엄마도 불쌍하다”며 “저와 아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이때까지 고생하고 망가진 몸을 치료해 주고 싶다”면서 재판부에 선처를 부탁했다.

A씨 측 변호인은 “코로나19로 혼자 피해자를 돌보던 피고인은 육체·정신적으로 극한에 몰린 상황이었다”며 “온 마음을 다해 일평생을 피해자에게 바친 피고인은 이제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서 속죄하며 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날 재판부는 “장애로 인해 피고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던 피해자는 한순간에 귀중한 생명을 잃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 의사는 고려되지 않았다”며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딸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피고인은 범행 이전까지 38년간 피해자를 돌봤고, 피해자의 장애 정도를 고려하면 많은 희생과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라며 “그동안 피해자와 함께 지내면서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큰 죄책감 속에서 삶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이번 사건이 A씨의 잘못만은 아닌 중증 장애인 가족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국가 시스템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국가의 지원 부족도 이번 사건 발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며 “오로지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날 재판에 아들과 함께 나온 A씨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으나 집행유예가 선고되자 법정 밖에서 소리 내어 울며 오열을 참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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