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서울 동작구에 있는 아파트를 보유한 집주인 A씨는 최근 절세를 위해 매도를 준비하다 세입자의 의사 번복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세를 살고 있던 세입자가 계약 만료 한 달 가량을 앞두고 계약을 갱신하고 싶다고 해 주택처분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높은 세금 탓에 실거주 할 수 없는 아파트를 구매하려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아 세입자에게 이사비 등 위로금을 주고서라도 나가달라고 요구해야 하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서 보증금 3억9000만원의 아파트에 거주 중인 B씨는 오는 8월 계약만기를 앞두고 “실거주하겠다”는 집주인의 통보에 부랴부랴 보증금 5억원짜리 인근 아파트 전세를 구하고 계약금 이체도 완료했다. 그런데 대뜸 집주인은 “아무래도 보증금을 빼주기가 힘들다”며 새 세입자를 들이겠다고 통보해왔다. B씨는 황당했지만,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임대차보호법이 임대인과 임차인간 갈등을 키우고 있다. 법 시행을 소급적용해 순환 주기를 강제적으로 조정하면서 공급을 줄여버린데다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명확하지 않아 혼선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 서울 서대문구의 한 부동산 사무실 앞에서 한 시민이 인근 아파트들의 매매와 전세, 월세 가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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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 말까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계약갱신·종료’ 관련 분쟁 조정 건수는 110건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7건보다 15.7배 늘어난 수치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은 정부의 7·10 부동산 대책으로 시행한 임대차 3법 중 ‘주택임대차보호법’에 포함된 계약갱신청구권 시행으로 가속화됐다. 계약갱신청구권은 ‘2년’으로 굳어진 주택임대차계약 기간을 ‘4년’으로 보장하자는 게 기본 취지다. 그러나 새로운 법을 과거 계약까지 소급적용한데다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명확하지 않아 혼선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실제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주택 임대차 계약갱신·종료 관련 분쟁 조정 건수는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7월 1건이던 조정 건수는 같은 해 12월 41건으로 증가했다. 올해에도 △1월 29건 △2월 21건 △3월 21건 △4월 26건 △5월 13건 등으로 꾸준한 모습이다.
오락가락하는 법원 판결은 임대차 분쟁에 기름을 붓고 있다. 올해 3월 청구권 분쟁 관련 첫 재판에서는 ‘집주인이 실거주 목적으로 매입한 주택이더라도 기존 세입자가 청구권을 사용했다면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는데, 지난 5월에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실거주 의사를 밝혔다면 청구권을 거절할 수 있다’는 상반된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같은 모습에 일선 현장에선 결국 ‘자기 말이 옳다’며 굽히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임대차 분쟁 관련 상담도 크게 늘었다. 새 임대차법 시행 직후인 지난해 8월부터 올해 5월말까지 공단에 접수된 임대차 관련 상담건수는 7만 4456건으로 집계됐다. 월평균 약 6768건의 상담이 이뤄지는 것이다. 법 시행 전(지난해 1~7월) 월 평균 4594건의 상담 건수와 비교하면 1.5배가량 늘었다.
김예림 정향 변호사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소급 적용한 것에서부터 임대인과 임차인의 분쟁요소를 만들었다”며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한 법원 판단이 하급심위주로 나오다 보니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인데다 땜질식 처방을 통해 원안이 계속 바뀌는 탓에 혼선이 생기고 있어 법이 정착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