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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북한 핵실험이 영향이 있긴 했는데, 외국인도 투자할 때 이미 지정학적 위험이 ‘코리아 리스크’에 다 감안돼 있어요.”
9일 오전 9시43분께 북한의 5차 핵실험 소식이 전해졌지만 A 시중은행의 외환딜링룸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연초에 이어 8개월 만에 북한이 핵실험에 나섰다는 소식에도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잠시 키웠던 상승 폭을 반납했다.
이날 금융시장에서 더 주목했던 것은 간밤 세계 금융시장의 동향이었다. A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이 정도로 시장이 요동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간밤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과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에 대한 실망감 영향으로 환율이 이미 상승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北 지정학적 위험보다 대외변수 부각
이날 금융시장은 북한 핵실험 소식이 전해지기 전부터 약세로 출발했다. 간밤 열린 ECB는 종전 정책을 유지한 데 그쳤고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도 내년 3월 마무리되는 자산매입 프로그램(QE)과 관련해 연장 논의가 없었다고 밝히면서, 글로벌 유동성 장세에 대한 기대감이 한풀 꺾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한 경계감도 강해졌다. 미국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예상치를 밑돌며 고용시장의 견조함을 시사했고 국제유가 반등으로 물가상승률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목표치인 2.0%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다.
또다른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달러당 1100원으로 올라서자 원화로 바꾸려는 수출업체 네고물량이 대거 나왔고 1100원선이 깨지면서 롱스탑(손절매도) 물량도 있었다”고 전했다.
위험자산으로 꼽히는 주식시장에서 코스피는 1% 넘게 내리긴 했지만 북한 핵실험 영향은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서상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ECB 실망감에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차익 실현 물량이 나왔던 것이지 북한 핵실험 영향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판단했다.
북한 핵실험 영향이 크지 않았다는 것은 채권시장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채권시장에서는 더욱 북한 핵실험 영향이 미미했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채권은 지정학적 위험이 불거질 때마다 채권금리가 하락(채권값 상승)하곤 했다. 하지만 이날 국고채권 3년물 금리는 0.04%포인트 올랐다. 오히려 채권값이 떨어지는 반대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점차 영향력 줄어드는 北 위험
북한 관련 지정학적 위험이 반복되다보니 금융시장도 반응 폭이 점차 작아지는 추세다.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당일 반응을 보면, 북한이 처음 핵실험했던 2006년 10월9일 1.5% 절하됐지만 2차 핵실험 때 0.1% 절하되는 데 그쳤다. 3차 핵실험 때는 오히려 0.4% 절상되기도 했다.
민경원 NH선물 연구원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는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다른 양상으로 이어졌지만 북한 핵실험은 이미 시장에서도 학습효과가 생긴 이슈”라고 봤다.
서상영 연구원 역시 “북한 관련 지정학적 위험에 점차 내성이 강해지고 있다”며 “이날도 대외 변수에 따라 시장이 움직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