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강력한 대통령의 권력을 기반으로 국가주도 계획경제를 도입해 전쟁의 폐허 더미에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에 이르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는 등 선진국 문턱을 눈앞에 뒀다.
반면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릴 만큼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권력으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12년 동안 집권하다 4·19 민주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이승만, 1972년 10월 유신헌법을 선포한 뒤 아예 대통령 직선제를 없애고 20년 가까이 장기집권한 박정희,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7년 임기 대통령에 오른 전두환 등 1987년까지 우리나라 대통령은 민주적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 전까지 국민은 대통령을 선출하지도 못했고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했다.
‘87년 체제’에서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등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보했다. 30여년 동안 노태우 대통령을 시작으로 총 6명의 대통령이 5년 임기를 모두 채우고 여야간 정권교체가 2번이나 되는 등 정치민주화에는 큰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삶의 질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회경제 민주화 등 실질적 민주주의가 안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제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해법을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권력을 분산해 효율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국민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87년까지 9차례 개정됐다. 1987년 이후에도 수차례 개헌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30여년간 현 체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들어선 ‘국민의 정부’가 의원내각제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이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개헌이 이뤄지지 못했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극단적 대결 정치와 해묵은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선거제도와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지만 불발됐다.
개헌 움직임은 19대 국회에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2012년 11월 발족한 ‘분권형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개헌 모임) 소속 의원은 현재 여야를 합쳐 155명에 달한다.
개헌 논의는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비롯해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내치는 총리, 외교·국방은 대통령), 독일식 의원내각제 등 다양하다. 큰 줄기는 집권 초반에 왕처럼 군림하다가 4~5년차에는 레임덕에 시달리는 현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중국 상하이를 방문해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이 터질 것”이라며 개헌을 불지폈다. 하지만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제동을 건 이후 개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개헌 모임 야당 간사인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자신이 집필한 ‘개헌을 말한다’ 제목의 책에서 “대한민국 정치는 사람의 문제도 있지만 제도 또한 큰 문제다. 그 제도의 정점에 제왕적 대통령제가 자리하고 있다”며 “정치개혁의 출발점은 통치구조를 과감하게 바꾸는 헌법 개정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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