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해외 영업 경력만 가지고는 다시 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만의 기술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으로 폴리텍대학에서 ‘베이비부머 기술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3년의 실업자 생활을 마치고 억대 연봉자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에서 베이비부머 훈련과정을 받고 억대 연봉 계약으로 해외 취업에 성공한 전명기(사진·56)씨. 그는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주도했던 베이비붐 세대다.
| 미얀마 양곤 공장 생산관리 총책임자로 취업한 전명기(오른쪽)씨가 현지 근로자에게 섬유 인쇄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 한국폴리텍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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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는 충남대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1988년부터 로옴코리아에서 해외 영업 업무를 시작했다. 업무 특성상 영어도 곧잘 했다. 그는 3년 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동차 부품 수출업체를 창업했다. 창업도 대성공이었다. 승승장구하며 ‘우수 무역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원 개발사업에 관심을 둔 것이 문제였다.
그는 2008년 야심차게 시작한 구리광산 사업이 실패로 끝나면서 창업 19년 만에 실업자로 전락했다. 이후 3년간 재취업에 실패하면서 해외 영업 경력만으로는 인생 이모작을 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기술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에서 운영하는 3개월 과정의 ‘디스플레이 인쇄직종’ 베이비부머 훈련에 참가해 스크린 인쇄 기술을 배웠다. 스크린 인쇄는 실크스크린을 활용해 섬유·비닐·플라스틱 등에 인쇄하는 기술이다. 훈련 과정을 마친 뒤 훈련 동기생 절반이 지역 중소기업 인쇄기술자로 취업하는 등 취업률도 높았다.
그러나 훈련생의 면면을 파악하고 있던 지도교수는 전씨에게 해외 취업을 추천했다. 전씨의 해외 영업 경력과 어학 능력, 탁월한 스크린 인쇄 기술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다.
지도교수의 소개로 전씨는 미얀마 양곤 공장의 생산관리 총책임자로 취업이 확정, 지난달 3일 출국했다. 전씨가 취업한 ‘ALL ACE’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섬유인쇄기업으로, 현지인 80명과 한국인 3명이 근무하고 있다. 전씨의 연봉은 10만 달러(한화 약 1억원) 수준이다. 그는 “그동안 쌓아온 경력에 기술을 보탰더니 안정적인 미래가 눈앞에 펼쳐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