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이럴 거면 자료를 왜 내셨어요? 그냥 숙제하신 거에요?”
한국은행이 발간한 연구 보고서를 보고 있으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계량 분석을 잘 해 놓고도 결론은 종전 연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도록 의미를 퇴색시키거나 찬성, 반대와 같은 특정 의견을 갖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자의 해석이 결과를 중화시켜 결국엔 맹탕을 만들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집값 상승이 물가에 반영되지 않아 지표와 체감물가가 괴리된다는 지적이 있었던 데다 미국, 일본 등은 이미 주거비를 포함한 물가지수를 산출하고 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각종 제약 속에서도 주거비를 물가지수에 포함하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은의 이런 입장은 ‘주거비 포함 물가지수’ 측정에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충분했다. 그러나 보고서 발표 다음 날 서영경 금통위원이 주거비를 포함한 물가지수 산출에 긍정적인 의사를 공표, 한은과 금통위원간 의견차가 나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한은은 주거비 포함 물가지수에 부정적이지 않음을 강조하기 바빴다.
이달 21일 발간한 ‘기업 재무상태 전환의 주요 특징’이라는 제하의 보고서는 한계기업의 회생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에 대해 연구한 자료다. 기존 연구에선 한계기업(3년 이상 이자보상배율 1미만)의 63.6%가 10년 내에 1회 이상 이자보상배율이 1이상으로 올라가면서 ‘정상’ 기업이 된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한계기업은 정상 기업이 됐다가도 언제든 다시 한계기업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이자보상배율이 장기간 평균 1 이상을 유지한 경우’로 회생기업을 책정할 필요가 있음을 제기했다. 그 결과 한계기업의 회생률은 고작 15.0~36.3%에 불과하다는 게 이 보고서의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낮은 회생률이 회자될까 걱정이 됐는지 ‘회생 기준이 엄격하다는 점을 감안해 적지 않은 신규 한계기업이 회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이며 연구 결과가 갖는 의미를 스스로 퇴색시켜버렸다.
국정감사에선 한은이 문서의 80%를 비공개로 하고 있다며 직원 입장에선 일할 맛 안 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나왔는데 이런 분위기라면 자신이 쓴 보고서가 공표되지 않았다고 아쉬워할 직원이 과연 몇이나 될까에 더 큰 의문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