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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공교롭게도 적장의 무덤 위다. 뉴욕 맨해튼 콜럼버스서클 앞 워너브라더스빌딩은 명품 매장이 즐비한 곳이다. 이곳에 아마존의 오프라인 서점인 ‘아마존북스’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문을 열었다. 아마존의 7번째 오프라인 서점이다. 이곳은 한때 미국의 2위 서점인 보더스의 서점이 있던 곳이다. 보더스는 반스앤노블과 함께 미국의 서점 시장을 양분하던 회사다. 하지만 아마존이 급부상하면서 경영난을 겪다 결국 지난 2011년 폐업했다.
온라인은 온통 아마존의 세상이다. 미국에서 팔리는 책 두 권 중 하나는 아마존을 통해서 팔린다. 아마존의 위상을 따라올 자가 없다. 아마존은 이제 자신이 황폐화한 그 땅 위에 내려왔다. 온라인 유통을 완전히 장악한 아마존은 이제 허물어져 가는 오프라인 서점시장에 자신의 제국을 다시 건설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다.
아마존式 오프라인은 다르다…온라인 데이터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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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북스의 첫인상은 여느 서점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너무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마존이라면서 뭔가 확연히 다르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조금 실망스러울 정도다. 크기도 370㎡(약 112평) 정도로 비교적 아담한 매장이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아마존북스만의 고유한 색깔이 드러난다. 아마존북스는 평범한 서점의 외관에 온라인 아마존의 방대한 데이타를 철저히 활용하는 방식을 접목했다.
아마존북스에 진열된 모든 책은 표지가 정면으로 보이도록 배치돼 있다. 단 한권도 보통의 서점처럼 세로로 빽빽하게 꽂혀 있지 않다. 책의 표지가 온전히 드러나면 그만큼 시선을 더 끌지만, 그만큼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배치할 수 있는 책의 종류가 대략 5분의1 수준으로 줄어든다. 대신 아마존북스는 고객들이 4점 이상의 평점을 준 책만 배치하는 전략을 쓴다. 평점이 나쁜 책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 저자의 다른 책은 혹시 없나요?”라고 한 점원에게 묻자 그는 “그건 아마존닷컴에서 주문하시면 됩니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아마존북스엔 데이터를 활용한 선택과 집중이 극대화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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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은 처음부터 일반 서점들과 접근방식이 달랐다. 아마존은 철저히 고객들의 평가 시스템을 기반으로 서점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프라인이라고 해서 이 원칙이 다르지 않았다. 초창기 아마존이 책에 대한 후기를 인터넷에 남길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어느 출판사의 한 중역이 아마존에 항의 편지를 보냈다. 너희의 직업은 책을 깔아뭉개는 것이 아니라 책을 파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고 비꼬는 내용이다. 편지를 읽은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책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게 아니야. 고객들의 구매 결정을 도와주는 걸로 돈을 버는 거지“라고 말이다.
결제도 아마존 앱으로…온라인 없는 오프라인은 없다
아마존북스는 단순히 온라인 아마존의 데이터만 활용한 게 아니다. 아마존북스는 온라인 아마존을 현실에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처럼 모든 시스템을 온라인 기반으로 맞춰 놓았다. 아마존북스는 책에 가격표가 없다. 가격은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아마존 애플리케이션을 띄워놓고 책의 사진을 찍으면 아마존에서 팔리는 가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아마존북스는 아마존 온라인과 완전히 똑같은 가격에 판매한다. 고른 책을 구매하고 싶으면 스마트폰에서 ‘아마존북스 체크아웃’을 누르고 점원에게 보여주면 점원이 바코드를 읽는 것으로 끝난다. 온라인 아마존에 이미 등록된 신용카드로 결제가 자동으로 이뤄진다. 아마존 앱 없이도 서점에 비치된 바코드에 스캔해서 가격을 확인하고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이 아마존 계정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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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공룡이 오프라인 바다로 뛰어든 이유
한때 아마존과 같은 시애틀에 본사를 둔 스타벅스가 아마존에 제휴를 제안한 적이 있다. 아마존의 책을 스타벅스 매장에 배치하자는 것이었다. 아마존도 내부적으로 가능성을 타진했다. 당시 스타벅스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는 제휴 조건으로 아마존 지분 10%와 경영이사 1명의 자리를 요구했다. 베조스는 스타벅스 제안을 거절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그는 10% 지분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련이 남았다. ‘1% 미만의 지분이라면 모를까’라고 베조스는 생각했다. 사실 오프라인은 고비용과 비효율의 상징이다. 온라인과 비교하면 훨씬 많은 운용인력이 필요하다. 특히 막대한 매장 임대료는 가장 큰 부담이다. 유동인구가 많고 접근성이 좋은 지역일수록 임대료가 비싸다.
하지만 아마존은 오프라인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아마존북스 뿐만이 아니다. 오프라인 식품매장인 ‘아마존 고(Amazon Go)’는 물론이고 온라인에서 주문한 신선식품을 직접 매장에서 찾아가도록 하는 `아마존프레시 픽업(AmazonFresh Pick-up)`도 선보였다. 오프라인 확장전략에 매우 공격적인 모습이다. 아마존은 온라인시장이 여전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오프라인시장 규모를 따라가지 못한다. 미국 최대 소매판매점인 월마트의 지난해 매출액은 4860억달러로 미국 온라인 리테일 판매금액 전체를 합친 3600억달러보다 더 컸다. 아마존의 작년 전체 매출은 1360억달러로 월마트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 게다가 월마트는 지난해 ‘아마존 킬러’로 불리던 온라인 유통업체 제트닷컴을 인수했다. 이후 월마트의 온라인 매출이 급성장하며 아마존을 위협하고 있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아마존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기반을 닦은 아마존이 이제 오프라인시장에서 본격적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도 단순한 오프라인 진출이 아니다. 온라인 시스템으로 무장한 새로운 형태의 오프라인사업으로 승부하는 이른바 `O4O(Online for Offline)` 형태다. 스캇 갤러웨이 뉴욕대 교수는 “아마존은 수 천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열거나 인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마존은 연내 맨해튼 미드타운 34번가와 뉴저지 대표 쇼핑몰인 가든스테이트 플라자에도 추가로 오프라인 매장을 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