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빨라지는 디지털금융…기술 못 쫓아가는 제도

  • 등록 2023-04-04 오후 5:53:10

    수정 2023-04-04 오후 7:49:28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최근 인공지능(AI) 개발을 멈추자는 자발적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개발을 하지말자는 게 아니라 개발보다 앞서 제도를 정비하자는 것으로, 최초 서명자인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과학기술계 저명인사 1000여명이 사인했다. 인간보다 더 똑똑한 AI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인데, 우후죽순 난개발이 이뤄질 경우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그 전에 제도부터 정비하자는 것이다.

AI개발도 잠시 중단하자는 데

동시에 이러한 움직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고, 진정선 논란도 일고 있어 개발중단은 사실상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서울 정도의 기세로 빨라지고 있는 AI개발에 앞서 제도정비와 같은 질서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비단 AI뿐만이 아니다. 제도가 기술이나 시장 변화보다 뒤처져 우를 범하는 일은 한둘이 아니다. 이는 항상 불확실성으로 다가와 불안심리를 키우고, 여러 부작용을 가져와 경제를 멍들게 한다. 가상자산이 그랬고, 자율주행차 등 신기술도 제도가 받쳐주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다.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뿐 아니라 기존 산업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자주 보인다. 제도가 달라지는 시대흐름, 변화상을 반영하지 못한채 방치돼 있어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들이 연출되곤 한다.

당장 스마트폰 뱅크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에서 ‘폰뱅크런’(스마트폰을 이용해 고객들이 맡겨놨던 예금을 단기간에 대량인출하는 사태)이 발생하면서다. 실제 국내에서도 SVB 사태 이후 불안한 국내 고객들이 은행에 맡겨둔 5000만원을 초과하는 자금을 인출하는 상황이 일부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원금과 이자를 합쳐 5000만원이 넘는 금액은 예금자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2의 SVB사태 대비책 있나

디지털금융은 편리함을 무기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대비하기 힘든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곤 한다. 은행을 가지 않고도 맡겨놨던 돈을 쉽게 이체할 수 있게 됐지만, 폰뱅크런 같은 사태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국내 금융시장은 당장 폰뱅크런 사태가 발생할 만큼 취약하진 않지만, 고객들은 여전히 불안해하다. 어느날 갑자기 SVB 사태가 국내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년 넘게 예금자보호한도가 5000만원으로 설정돼 있다. 이제라도 예금자보호한도를 늘려 고객의 불안감을 없애야 한다. 금융사의 위기시 정부가 긴급자금을 바로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금융안정계좌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

선불결제, 간결제 등 온라인 결제시장도 계속 커지고 있지만, 제도정비가 미흡해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다. 선불업자의 자금이체업 등록 의무, 대금결제업자의 예탹금 외부 예치 100% 등을 담은 잔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이해기관간 알력, 정치권 다툼 등으로 몇 년째 잠만 자고 있다. 2021년 8월 터졌던 머지포인트 사태 같은 소비자 피해 사례가 또다시 터지지 말란 법도 없는데 말이다.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만 고칠텐가.
사진 우리금융미래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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