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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서 고려대 교수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글로벌금융학회와 한국금융연구원이 공동개최한 정책심포지엄 및 학술대회에서 국내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이같이 지적했다.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과 금융환경 혁신’을 주제로 열린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최근 논란이 식지 않고 있는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의 셀프연임 논란 및 ‘낙하산’ 혹은 ‘거수기’ 이사회 문제와 관련 금융, 회계, 법, 정치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사외이사 제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주주위원회, 이사 단임제 등 다양한 대안을 선보였다.
이날 발표를 맡은 박 교수는 국내 금융사에 제기되고 있는 지배구조 논란을 △권력기관의 인사개입 △이사회의 자기 권력화 △CEO의 셀프연임 △노조의 경영 참여 등 크게 네 가지로 정리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논란의 핵심 배경을 지배 주주의 부재로 꼽으며 이에 따라 경영권 승계나 임원 선임 등이 주주보다는 회사 외부 세력, 전문경영자, 대표성 없는 이사회, 노조 등에 휘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배주주가 없는 국내 금융사 구조상에서 주주대표성 확보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주위원회 제도 도입 △1%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군 형성 노력 △기관 투자자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이사회 단임제 적용 등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주주의 가치가 사외이사들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모범 사례로 우리은행을 들었다. 우리은행의 민영화를 통해 4% 내외의 지분을 갖게 된 5대 주주가 사외이사후보를 추천하고 이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주주 간 상호견제로 특정주주의 사익 추구 통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예금보험공사 이사가 행장추천위원회에 들어가는 문제로 논쟁이 생겼을 때 여러 주주들이 이를 막아섰다. 이에 따라 차기 행장 선임 절차가 주주의 뜻대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이사회의 전문성과 관련된 지적도 쏟아졌다. 황인태 중앙대 교수는 “금융회사 모범규준상 사외이사가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수 있는지는 각 금융사가 판단한다”며 사실상 유명무실한 사외이사 자격요건에 대해 비판했다. 전 산은금융지주 사장이었던 윤만호 EY한영 부회장 역시 “사외이사들이 정말 충실하게 근무하고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지에는 의문이 든다. 전문성이 없는 사외이사들이 선임돼 이사회를 할 때 사외이사들에게 교육하는 시간이 필요한경우가 많다”며 황 교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날 축사를 맡은 김용태 국회정무위위원장은 “ 지배구조 문제를 비롯한 국내 금융사들의 논란은 권력의 문제”라며 “정치권력과 금융감독권력의 논리에 함몰돼 실질적 금융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이 제시한 대안은 ‘사후 규제’다. 김 위원장은 “건전성, 불안전판매 등 금융소비자 보호 차원 이외에는 사전 규제가 아니라 사후 규제로 돌려야 금융산업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며 “사전 규제는 진입 장벽을 치는 자와 진입 장벽에 이미 들어간 사람의 특권과 이익에 봉사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