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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반도체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 15일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K칩스법’으로 불리는 패키지법안 중 하나다. 반도체 투자 활성화와 인재 육성을 위해 마련됐다. 지난 8월 발의됐으나 거대 여야의 정쟁과 국정감사 등이 겹치며 뒷전에 밀려 이달 겨우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개정안에는 △신속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조성·운영을 위한 국가산업단지로의 우선 지정 △전략산업 등 관련 대학 정원 조정 근거 신설 △특화단지 조성·운영 및 입주기관 우선 지원 근거 마련 △공기업·준정부기관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및 사업적정성 검토 근거 신설 △인허가 처리 기간 30일에서 15일로 단축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는 반쪽짜리 지원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업의 반도체 투자세액을 공제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K칩스법의 두 축 중 하나인 조세특례제한법은 예산안 부수법안으로 묶였는데, 예산안 처리와 부수법안을 두고 여야 간 이견이 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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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은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투자를 대상으로 최대 16%의 세액공제율을 적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대기업이 6%,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다.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낸 개정안은 이를 각각 20%, 25%, 30%로 늘리자는 게 골자다. 더불어민주당은 세액공제율 확대가 과도한 특혜라며 대기업 공제율은 10%, 중견기업은 15%로 조정하자고 맞서고 있다.
전폭적인 지원을 쏟아내며 반도체 투자를 유치하려는 외국과는 딴판이다.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은 총 527억달러(약 69조원)의 예산을 반도체 투자 지원에 투입하는 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아울러 기업이 반도체와 장비 생산을 위해 쓴 설비 투자액의 25%는 세액을 공제해준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릴 계획인데 이를 위해 1조위안(187조원)을 투입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산업은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특성상 대기업 투자에 치중될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 지원은 안된다는 인식이 강해,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반도체산업 지원이 취약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외국과 비교하면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지원 내용이 부족한데 (국회가)반도체 기업의 발목마저 잡고 있다”며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도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세제 혜택이 빠지다 보니 K칩스법은 절름발이 상태”라며 “제도적 뒷받침이 취약해 한국에 투자할 유인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K반도체 갑자기 무너질 수도”
실제 반도체 제조기업들은 각종 지원책을 찾아 미국, 일본 등으로 원정투자에 나서고 있다. 대만의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400억달러(52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에도 9800억엔(10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미국기업 마이크론도 일본 히로시마현에 1394억엔(1조3800억원)을 투자해 반도체 제조 설비를 건설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가 464억엔(4600억원)을 지원한다.
삼성전자(005930)도 미국 투자를 단행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에 1676억달러(218조88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고, 최근 텍사스주 테일러시에서 48억달러(6조2600억원) 규모의 세금을 감면받았다.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이 뒤쳐지지 않으려면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를 놓고 국가별로 정책 경쟁을 하는 등 생존게임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반도체기업 유치는 단순히 반도체산업만의 문제를 넘어 국가 경제와도 직결된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에서 반도체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 수출액은 6291억달러다. 이중 반도체 수출액이 1202억달러로, 19.1%를 차지한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자동차, 철강, 디스플레이, 무선통신 등 15대 주요 수출 품목 중 1000억달러를 넘은 건 반도체가 유일하다. 반도체 생산이 줄어들 경우 수출 역시 타격을 입어 경제 성장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반도체 생태계가 무너져 국가적인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추락할 가능성도 크다. 국내에 반도체제조 시설이 적으면 소재·부품·장비나 팹리스 등 전·후방산업이 국내에 자리잡을 유인이 부족해진다는 설명이다. 고급 인재가 해외로 유출될 우려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생태계의 유지, 확대와 더불어 기술 경쟁력을 이끌 인재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미국이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갑자기 무너진 것처럼 우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