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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는 트로이 서튼(61)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시간당 12달러(1만4000원)를 받고 일했던 관리직에서 해고됐다. 올해 여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 관리인으로 재취업에 성공했고 시간당 18달러(약 2만1000원)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와 아내는 “더 많은 급여를 받으면 (더 많은 돈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팬데믹) 전보다 지출이 더 많아져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튼은 “수도, 전기요금, 케이블 요금이 1년전보다 많이 올랐다. 애완견 병원비과 사료값, 집 근처 슈퍼마켓의 식료품 가격도 크게 뛰었다. (펜실베니아까지) 장거리 통근을 해야 하는데, 휘발유 가격도 올랐다”고 설명했다.
임금 올랐지만 물가는 더 올라…더 벌어도 덜 남는다
코로나19 사태 초반 미국에선 실직자들이 대거 발생했다. 이후 연방정부의 실업수당 보조금 지급, 봉쇄조치, 감염 우려 등 복합적인 요인들로 실직자들의 직장 복귀가 늦어졌다. 사람을 구하기 힘들어진 고용주들은 임금을 올려 구인난을 해소했다. 이에 따라 8월 소득 하위 25% 계층의 연간 임금 상승률은 4.8%로 치솟았다. 2002년 이후 가장 큰 폭이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되레 0.5% 하락했다. 물가 상승세가 더 가팔랐기 때문이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8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동기대비 5.3% 상승했다. 6월과 7월(각 5.4%)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팬데믹 직전 2년 동안 2.1%와 비교하면 2배 이상이다.
공급망 악화로 식료품·생필품, 기름 등 저임금 근로자들의 지출 비중이 높은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이 크게 올랐다. 식료품 가격은 2020년 2월 이후 연간 4.3%의 속도로 상승했다. 이는 2012년 이후 가장 가파른 것이다. 휘발유 가격은 2020년 2월부터 올해 8월까지 11.1% 급등했다. 이달 초엔 갤런당 3.26달러로 7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저소득층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임대료도 지난 6~8월 불과 3달여 만에 2.8%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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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경제학자들은 WSJ의 7월 설문조사에서 공급망 악화가 완화하고, 보복소비 등에 따른 수요가 둔화하면 물가상승률이 진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말 물가상승률이 4.1%까지 치솟은 뒤, 내년 2.5%, 2023년 2.45%로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팬데믹 이전 10년 동안의 평균 물가상승률인 1.8% 수준으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라고 WSJ는 내다봤다.
특히 물가가 공급망 문제로 계속해서 상승 압박을 받고 있는 반면, 임금은 현 수준에서 더 오를 기미가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연방정부의 실업수당 지급 종료로 직장에 복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임금 상승 추세도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실질 임금도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WSJ는 “노동 공급을 위축시켰던 요인인 학교 대면 수업 중단, 연방정부 소득 지원 등이 완화 또는 사라지고 있다”며 “노동공급이 다시 확대되면 그만큼 노동자의 임금협상력은 약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