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방호복에 `형형색색`…그림 그리는 간호사

코로나 전담병원 서울의료원 손소연 간호사 인터뷰
방호복 입으면 의료진 간 식별 힘들어 그리기 시작
"내 그림, 동료와 환자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
"의료진·국민들 모두 지치지 않고 코로나 이겨내자"
  • 등록 2020-12-07 오후 4:30:36

    수정 2020-12-07 오후 9:53:00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코로나가 길어지고 있는데 동료에겐 힘을, 환자에겐 안도감을 주고 싶어요.”

‘둘리·또치·도우너’ 같은 옛날 만화 캐릭터부터 요새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파이더맨·헐크·아이언맨’까지. 코로나19 전담병원인 서울의료원 의료진이 입는 하얀 방호복에 색색깔 그림이 피어올랐다. 이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손소연(30)씨의 작품이다. 손씨는 “가볍게 시작한 그림이지만 동료들과 환자들이 내 그림을 보고 잠시나마 웃을 수 있어 기쁘다”라며 “다들 힘든 상황이지만 지치지 말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아기공룡 둘리 캐릭터들이 그려진 방호복을 입은 서울의료원 간호사들. 맨 앞이 손소연 간호사. (사진=손소연 간호사)
방호복에 귀여운 그림…힘든 의료진도, 아픈 환자도 잠시나마 웃음

6년차 간호사인 손씨는 지난 3월부터 코로나 격리 병동에서 근무하고 있다. 답답한 방호복을 입고 일한지 벌써 열 달째다. 손씨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월쯤부터다. 의료진 방호복은 등쪽에 ‘X’, ‘O’ 같은 표시로 의사와 간호사 및 직급을 표시한다. 그러나 상황실에서 CCTV로 병동을 살펴 볼 때면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힘들다. ‘완전무장’을 하고 병동에 올라가면 시야까지 제한돼 마주쳐도 서로 알아보기 어렵다.

‘X자’ 대신 그린 손씨의 그림은 화제가 됐다. 의료진들이 서로 누군지 캐릭터로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손씨는 “처음엔 주위 동료들의 방호복에 만화 캐릭터를 그려줬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매우 좋았고 나중엔 직접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려 달라고 주문하더라”라고 웃었다.

동료들과 환자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며 그는 근무가 끝난 후에도 남아 그림을 그리곤 한다. 손씨는 “방호복 입는 기간이 길어지니 다들 힘든 상황인데 잠시라도 동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것 같다”며 “동료가 ‘너무 힘들어서 짜증이 나려고 하는 순간 거울을 보고 다시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해줬을 땐 굉장히 보람찼다”고 밝혔다.

낯선 공간에 입원한 어린 아이들도 그림을 보고 병원을 덜 무서워한다. 손씨는 “가끔 너무 어린 아이들도 병동에 입원하는데 무서워하다가도 그림을 보고 다가와 ‘여자예요, 남자예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서울의료원 의료진들. 방호복에 스파이더맨, 헐크, 아이언맨 등 마블 영화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다. (사진=손소연 간호사)
“코로나 장기화…거리두기 잘하고 마스크 잘 써주세요”신신당부

손씨는 ‘코로나 병동 간호사’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서 방호복 그림과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국민들과 간호학과 학생들이 찾아 응원 메시지를 전하고 가기도 한다. 그는 “친구들한테 방호복 그림을 자랑했더니 SNS 계정을 만들라고 하더라”라며 “처음엔 그림 그리고 노는 것처럼 보일까봐 하지 않으려 했는데 코로나 장기화로 힘든 상황에서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손씨는 3개월 업무, 1주일 자가격리 후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다시 근무에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자신이 감염된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컸다. 혹시 모를 가능성 때문에 기숙사에 사는 동안 부모님도 만나지 않았다.

손씨는 “8~9월에 확진자가 폭증했을 땐 방호복 밖으로까지 땀이 흘렀고 공격적인 환자들이 있어 힘들었다”며 “환자들이 병동에 갇혀 있게 되니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던 환자들이 퇴원할 때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면 감동받는다”고 웃었다.

그는 방호복에 그림 그리는 날이 끝나길 기대한다. 코로나가 종식되는 날이다. 손씨는 “소원을 빌 수 있다면 얼른 코로나가 사라져 다들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는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하고 싶다”며 “감염경로와 증상이 다양하고 후유증도 무서운 병이기 때문에 다들 거리두기를 잘하고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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