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공항 유치 놓고 지역다툼 하는 건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

경제성 따지지도 않고 추진한 신공항 계획 결국 무산
정치적 논란과 지역 이기주의 따른 사회적 비용 막대
  • 등록 2016-06-21 오후 5:59:50

    수정 2016-06-21 오후 5:59:50

[세종=이데일리 피용익 박종오 기자] 박근혜 정부가 영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 것은 정치적 포퓰리즘과 지역 이기주의를 딛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국책사업은 행정부가 경제적 필요성을 판단해 추진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영남권 신공항 건설은 처음부터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출발했다. 최대 10조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사업인데도 경제적 고려는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정치적 판단으로 시작된 국책사업은 지역 갈등으로 이어졌다. 신공항의 경제적 가치를 따지기도 전에 일단 유치부터 하고 보자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이기주의가 작용했다.

포퓰리즘과 지역 이기주의에 의해 휘둘리던 영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은 이제 없던 일이 됐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벌어진 정치적 논란과 지역 갈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막대하다. 특히 이러한 논란은 다른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결정자들의 혜안이 요구된다.

MB정부가 백지화..朴대통령 대선 공약으로 부활

영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이 백지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시절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2011년 4월에는 신공항 건설 백지화를 발표했다. 공식적으로는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영남 분열이 정권 재창출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가까스로 꺼진 불이 다시 붙은 것은 2012년 대선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후보 모두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신공항 건설을 다시 추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에도 지역 갈등은 어김없이 재연됐고 영남은 두 동강으로 분열됐다.

영남권 신공항의 경제성 검토도 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한 국책사업은 사회적 혼란만 부추긴 채 결국 백지화됐다.

전문가들은 뒤늦었지만 다행이란 반응이다. 정윤식 경운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신공항의 필요성을 정말 심도 있게 봐야 하는데 그런 부분의 논의가 없었다. 지금 당장 공항이 부족한 건지, 미래에 부족할 걸 대비하자는 건지, 경제가 어려우니 뉴딜 정책을 하겠다는 건지 설명이 없었다”며 “정치적 공약이라고 해서 필요 없는 사업을 하는 건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박사는 “신공항은 과거에도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는데, 박근혜 정부가 공약을 지킨다고 정치적 논의를 너무 서둘렀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처음부터 입지 타당성 검토부터 다시 하겠다고 했으면 이렇게 다툼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국책사업 유치하려는 핌피 현상이 문제

두 차례나 백지화된 영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은 언제든 또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당장 내년에는 대선이 있다는 점에서 지역 표심을 잡기 위한 포퓰리즘이 재연될 조짐이 농후하다.

지자체들이 국책사업 유치에 사활을 거는 것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 때문이다. 신공항 건설의 경우 비용은 지자체 자금 투입 없이 전액을 정부가 지원한다. 10년 동안 공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일자리가 생겨나고 지역 건설업이 호황을 맞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공항이 완공되면 관광객 유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경제성이 있는 국책사업을 내 지자체에 유치하겠다는 핌피(PIMFY·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은 영남권 신공항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호남 고속철도(KTX), 항공정비(MRO) 단지, 서울-세종 고속도로 등을 둘러싸고도 지자체들의 유치 경쟁이 뜨겁다.

지난해 제주 신공항 입지 선정에 참여했던 학계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보통 신공항을 짓는다고 하면 소음 피해, 환경 파괴 우려 등으로 주민과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며 “공항을 서로 유치하겠다며 지역끼리 싸움을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사례”라고 지적했다.

지자체들의 ‘핌피’ 경쟁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국책사업을 꼼꼼하게 설계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강수 한국개발연구원(KDI) 국토·인프라정책연구부장은 “영남권 신공항의 경우 밀양과 부산은 사업의 내용과 목적이 다른데 한 곳을 선정한다고 해 지역 간 갈등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며 “국책사업은 계획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경제성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재호 박사는 “정부와 지자체가 매칭 펀드를 조성해 사업비를 함께 부담하고, 경제적 이익을 한 곳이 독식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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