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K팝이 걷고 있는 화려한 레드카펫의 밑바닥에는 검열 때문에 마음껏 노래도 부를 수 없었던 진흙이 있었고, 그곳에 김민기 형님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김민기의 등을 밟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형님 등 위의 흙 정도는 털어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모두가 이렇게 모였습니다.” (가수 박학기·한국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
| 박학기(왼쪽부터), 배해선, 장현성, 설경구, 방은진, 김형석, 한경록, 박승화, 루카가 5일 서울 강서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열린 ‘학전 어게인(AGAIN)’ 프로젝트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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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연출가 김민기(72)가 대표로 있는 대학로 소극장 학전의 폐관 소식에 학전 출신 가수·배우들이 뭉쳤다. 내년 2월 28일부터 3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학전에서 선보이는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위해서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가수 박학기가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다. 5일 서울 강서구 한국음악저작권협회 KOMCA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학기는 “눈부신 K팝의 뿌리에는 김민기 형님이 있었다”라며 “우리 모두는 김민기에게, 학전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학전은 ‘아침이슬’로 잘 알려진 김민기 대표가 1991년 3월 대학로에 개관한 소극장이다. 김광석, 윤도현, 여행스케치, 유리상자 등 수많은 가수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공연계에서도 의미가 큰 장소다. 김민기 대표가 독일 그립스 극단의 작품을 한국적으로 번안·각색·연출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의형제’, ‘개똥이’ 등이 이곳에서 관객과 만났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영난과 함께 위암 투병 중인 김민기 대표의 건강 문제가 겹치면서 내년 3월 15일 폐관을 결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박학기를 비롯해 작곡가 김형석, 유리상자 멤버 박승화, 여행스케치 멤버 루카(본명 조병석), 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 등 가수들과 ‘지하철 1호선’ 초기 멤버인 배우 설경구, 방은진, 장현석, 배해선 등이 참석했다. 작사가 김이나가 사회를 맡았다.
이들에게 학전은 배우이자 가수로서 첫 출발점이었다. 설경구는 대학 졸업 이후 용돈 벌이로 ‘지하철 1호선’ 포스터를 붙이다 배우로 캐스팅됐다. 설경구는 “나중에 김민기 선생님께 저를 캐스팅한 이유를 물으니 ‘성실해 보여서’라고 답하셨다”며 “청년 문화의 상징적인 존재인 학전이 사라진다는 소식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김형석 작곡가는 “나 역시 학전에서 김광석, 동물원, 노영심 등의 공연에서 건반을 치면서 데뷔한 셈”이라며 “김민기 음악에 담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서정성으로 큰 위로와 희망을 받았다”고 전했다.
| 서울 종로구 대학로 소극장 학전 앞마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민기 대표. 오른쪽은 가수 고(故) 김광석의 부조이며 왼쪽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극작가 폴커 루드비히와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의 부조다. (사진=극단 학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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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번 프로젝트가 학전의 폐관을 막기 위한 것은 아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김민기 대표가 더 이상 학전을 운영할 수 없다고 결정한 만큼 이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이 학전 출신 문화예술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다만 김민기 대표는 학전이 없어지더라도 극장 앞마당에 있는 가수 고(故) 김광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극작가 폴커 루드비히와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의 조각상만큼은 보존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은진은 “기업 후원이나 정부 지원으로 학전의 공간을 유지하더라도 김민기 선생님이 없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는 학전 출신 가수들과 배우들이 함께 하는 공연, 그리고 학전과 떼놓을 수 없는 가수 고(故) 김광석을 기리는 ‘김광석 다시부르기’ 공연, 그리고 김민기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은 공연 등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27명 이상의 가수들이 참여를 결정했고,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한 배우 황정민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출연진 규모와 공연 내용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공연 수익금은 학전의 재정난 해소 등에 쓰일 계획이다. 박학기는 “이번 프로젝트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