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가죽재킷의 게임광 'AI시대 잡스'로 떠오르다

시총 1조달러 돌파 엔비디아 이끈 젠슨 황CEO
대만 이민자 출신…기술변화 선제적 대응
3D게임 시대 대비에 GPU 개발
메타버스·자율주행차·AI시대 맞춰 AI칩 공략
"AI 기회를 잡기 위해 걷지 말고 뛰어라"
  • 등록 2023-05-31 오후 6:03:26

    수정 2023-05-31 오후 7:22:39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우리는 언제라도 30일 안에 폐업 당할 수 있습니다.”

미국 반도체기업 엔비디아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은 1993년 엔비디아를 창업한 후 30년 동안 이 말로 긴박감과 경계감을 늦추지 않고 달려왔다. 그 결과 엔비디아는 시가총액 1조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고, 황 CEO는 글로벌 반도체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1963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태어난 황 CEO는 대만과 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0살 때인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오리건 주립대학에서 전기공학 학사, 1992년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 졸업 이후 그는 반도체기업 LSI 로지스틱스, AMD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를 담당하다가 1993년 엔비디아를 설립, 30년째 CEO로 재직하고 있다.

황 CEO는 엔비디아 지분의 약 3.5%를 보유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시총이 1조달러를 돌파하면서 지분 가치도 약 350억달러(46조3050억원)에 이른다.

게임광에서 GPU의 아버지로

황 CEO는 종종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비교된다. 로이터 통신은 “잡스만큼 자신의 회사를 상징하는 CEO는 드물다”면서 “젠슨 황이 이를 이어갈 대표적 인물”이라고 했다. 잡스가 검정 터틀넥에 청바지, 스니커즈를 고집했다면, 황 CEO의 트레이드마크는 검은 가죽 재킷이다. 한여름에도 프리젠테이션에서 늘 가죽 재킷을 입고 나온다. 그는 늘 “가죽 재킷은 나의 상징”이라고 말해 왔다.

독특한 프리젠테이션도 비슷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연례기술 콘퍼런스 ‘GTC 2020’은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장소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본인의 집 주방이었다. 그는 “우리의 첫 주방 기조연설”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여기 내가 요리해둔 게 있다”며 오븐을 열고 올해 신제품을 꺼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다들 ‘집밥 먹기’에 처한 상황을 고려해 엔비디아 제품을 효과적으로 알린 셈이다.

기술 변화의 흐름을 선제적으로 파악하는 능력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초 개인용컴퓨터(PC)가 등장했지만, 주로 딱딱한 사무용 기계로만 활용됐다. 게임광이었던 그는 PC가 언젠가 게임, 동영상 등을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기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바로 세계 최초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인 엔비디아다.

잡스가 차고에서 매킨토시를 만들었다면 황 CEO는 서른 살 때인 1993년 고작 침대 2개만 있는 아파트에서 GPU 개발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PC의 핵심은 중앙처리장치(CPU)였다. 인텔은 CPU기술을 독점하며 X86칩을 매년 출시하며 승승장구했다. 황 CEO도 사실 CPU개발 욕심이 있었지만, 블루오션인 GPU시장에 ‘올인’했다. 물론 험난한 시작이었다. 2D, 3D, 음성 등 모든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단 한 장의 그래픽카드로 처리할 수 있는 칩인 ‘NV1’을 개발했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다. 가격은 비쌌고, 다른 기기와 호환도 잘 되지 않았다.

폐업 직전까지 갔지만 당시 최고 인기 게임 개발사인 일본 세가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며 버텼다. 준비된 자에겐 결국 시대가 열린다. 퀘이크, 레인보우식스 등 인기 3D게임이 하나둘 출시되면서 엔비디아의 두번째 칩인 ‘NV3’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그래픽 카드는 영상 그래픽 어댑터(VGA)라 불렀지만, 엔비디아는 자사 제품을 GPU로 명명했다. GPU가 인텔의 CPU와 동급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셈이다. 1999년 출신된 엔비디아의 대명사인 ‘지포스 256’은 처음으로 CPU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3D명령어를 처리하는 그래픽 카드였다.

2020년 5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오븐에서 새 제품을 꺼내는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사진=유튜브 엔비디아 계정 동영상 캡처)
AI리더로 자리잡은 젠슨 황

젠슨 황은 GPU가 게임용에 머물지 않고 미래 메타버스, 자율주행차 등 미래 기술의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했고, 관련 칩을 연이어 출시하는 베팅에 나섰다.

GPU는 이제 AI시대의 총아로 떠올랐다. AI의 핵심 기술은 초거대 데이터를 통한 딥러닝이다. 딥러닝은 사람의 신경망을 모방한 수많은 인공 신경망을 컴퓨터 내부에 생성해 이를 바탕으로 기계에 학습 능력을 부여하는 기술이다. 단순연산이 수없이 반복돼야 하는데 GPU가 CPU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특히 챗GPT와 같은 생성형AI를 위한 거대언어모델(LLM)을 자체 개발하기 위해선 엔비디아의 칩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빅데크들이 데이터센터 성능을 키우기 위해 엔비디아의 칩을 대거 매입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젠슨 황은 이젠 GPU를 넘어 애초 욕심을 냈던 CPU 시장도 넘보고 있다. 최근 영국 브리스톨 대학과 협력해 인텔과 AMD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칩을 사용해 슈퍼컴퓨터 이삼바드3(Isambard 3)를 구축했다. 인텔과 AMD가 수십년간 양분했던 CPU시장에 무서운 파괴자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뉴욕증권거래소 나스닥에서 30일(현지시간) 인텔과 AMD의 시가총액은 각각 1251억달러, 2017억달러이지만,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1조달러까지 치솟은 이유다. 젠슨 황은 “AI를 활용하지 않는 회사는 도태될 것”이라면서도 “모두가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는 컴퓨팅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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