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대통령 취임식을 불과 며칠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정부가 20년 이상 고수해온 `강(强)달러 정책`에 작별을 고했다. 1990년대 중반 빌 클린턴 행정부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로이드 벤슨의 약(弱)달러 정책을 “건전하지 못한 일”이라고 비판하면서 단번에 강달러 정책으로 돌아선 로버트 루빈 다시 재무장관의 선언이 사실상 끝을 본 셈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달러화가 너무 비싸 중국과 경쟁하는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결국 달러화 강세가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과 2000년대를 거치면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의 달러화 추락과 이후 2014년부터의 반등세 등 부침이 있긴 했지만 미국 정부의 달러화 강세 선호는 변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루빈 독트린(Rubin Doctrine)`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같은 상황을 두고 스트래티저스 리서치 파트너스의 돈 리스밀러와 에리카 핼리 콤프 이코노미스트는 과거사에 빗대 “지난 1971년 재무장관이던 존 코널리가 언급했던 `달러화는 우리 돈이지만, 당신들의 문제(The dollar is our currency, but your problem)`라는 발언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그해 8월15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이라는 조치를 발표했는데 금과 달러 교환을 중단하고 모든 수입품에 10%의 관세(=수입과징금)를 매기는 것이 골자였다.
이 발표전까지 국제통화시장은 브레튼우즈 체제 아래에 있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순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시키고 다른 나라 통화는 달러에 일정한 비율로 고정시키는 달러중심의 금본위제였다. 당시 미국은 세계 금 보유량의 80%를 독식하고 있었기에 이런 시스템이 가능했지만 50~60년대를 거치며 미국내 상황이 변했다. 베트남전쟁에 너무 많은 달러를 썼고 복지지출도 만만치 않았다. 필요한 달러를 마구 찍다 보니 달러가치는 떨어지고 금 보유량은 줄었다. 게다가 독일과 일본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며 상대적으로 무역적자까지 심해져 수년 만에 처음으로 국제수지 적자를 냈다. 이 때문에 닉슨은 강달러에서 약달러로 갈 것을 선언하고 이를 통해 미국 제품 가격 경쟁력을 높여 제조업을 살릴 계획이었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정책들은 당시와 꼭 닮은 데자뷰다. 닉슨과 같은 암울한 결과를 낳지 않기 위해서라도 트럼프 당선인은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정책에 신중해야 한다. 자국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려고 경쟁하는 환율전쟁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그 결과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