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의 경기 반등은 당국이 돈을 푼 데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월가 채권왕’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이데일리 등이 참석한 자사의 토털리턴 펀드 투자자 대상 화상 대담에서 “미국의 경기 반등은 실제 연방준비제도(Fed)가 유동성 지원 기구를 운용해 (미국 달러화를 완화적으로) 지출한 결과일 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성장의 본질은 소비 아닌 생산”
건들락은 미국 정책당국의 천문학적인 돈 풀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경제 성장의 본질은 소비가 아니라 생산”이라고 강조했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양적완화(QE)를 통해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매달 800억달러씩 사들이며 유동성을 공급하고, 재무부는 이를 통해 미국 전역에 돈을 뿌리는 자체가 근본적인 성장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미국 내 생산 부문은 반도체 부족 등으로 오히려 공급망 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건들락은 “미국은 1960년대 이후 가장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경험하고 있다”며 “이런 수준의 부양책은 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연준은 앞으로도 이같은 대규모 부양책을 반복적으로 쓸 것이라는 게 건들락의 전망이다.
건들락은 대담 내내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주택 임대료 폭등 가능성을 연준이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월가의 최대 화두는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었는지 혹은 계속 확산할지 여부인데, 특히 주목 받는 건 임대료 상승과 임금 인상이 꼽힌다. 둘은 한 번 방향을 잡으면 장기간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건들락은 “연준이 집값을 (폭등하는 쪽으로) 왜곡했다”며 “그로 인해 세입자들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부의 세입자 퇴거 유예 조치가 끝난 후 수개월 안에 임대료는 추가로 급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팬데믹발(發) 경제 봉쇄 탓에 임대료를 내지 못한 세입자들을 강제로 퇴거 시킬 수 없도록 유예 조치를 시행해 왔다. 올해 7월 유예 조치가 끝나자 다시 10월까지 연장해 놓았다. 그러나 그 이후 또 지속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건들락은 이와 함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항목 내에 집주인 등가 임대료(Owners’ equivalent rent of residences)가 아닌 실제 주택 가격을 적용했다고 가정하면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2% 이상 올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8월 CPI는 5.3% 뛰었는데, 실제 체감 물가는 10%가 넘는다는 의미다. 집주인 등가 임대료는 전년 동월 대비 2.6%, 전월 대비 0.3% 각각 상승했다.
기업의 임금 인상 압력 역시 마찬가지다. 건들락은 “노동정책이 너무 거칠다”며 “(구인난 탓에) 기업들이 직원을 채용하지 못하는 건 경제에 큰 상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아마존, 월마트 같은 유통 공룡을 비롯한 주요 기업은 직원 채용을 위해 임금을 올리고 있는 추세다. 그는 다만 “정부의 추가 실업수당 지급 종료가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건들락은 이같은 이유를 들어 “이번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지 않다”며 “일시적이라는 건 처음 거론된 2~3개월이 아니라 더 긴 시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더 나아가 “미국 정책당국은 달러화가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유지하는데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일갈했다.
주목 받는 건 돈 풀기 폐해의 금융시장 여파다. 건들락이 먼저 강조한 건 “물가연동국채(TIPS)가 너무 고평가돼 있다(TIPS 금리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TIPS 금리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금리를 나타낸다. 지난 14일 기준 -1.05%다. 사상 최저 수준이다. 기업 혹은 개인이 돈을 빌리는데 드는 실질적인 이자 부담이 마이너스라는 뜻이다. 월가에서는 ‘역대급’ 증시 폭등의 기저에 낮은 실질금리를 거론하는 목소리가 많다.
건들락의 TIPS 고평가 언급은 실질금리가 바닥을 치고 올라갈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뉴욕 증시가 조정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그는 최근 트위터에 “(긴축을 통해) 부양책을 억제할 수밖에 없다면 현재 주식 가치가 낮은 금리의 산물인 만큼 주가는 하락할 수 있다”고 썼다.
건들락은 아울러 “최근 구리/금 비율(구리 1온스 가격/금 1온스 가격)을 보면 국채 10년물 금리가 3% 안팎은 돼야 한다(국채가격이 하락해야 한다는 의미)”고 했다. 실물경제를 방증하는 구리와 안전자산을 대표하는 금 사이의 비율이 오르고 있는데, 현재 1.3% 안팎의 국채금리는 너무 낮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들락이 추천하는 투자 상품은 무엇일까. 그는 “금 가격이 여전히 저렴해 보인다”고 했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금값은 최근 온스당 180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는 또 “얼마 전 처음으로 유럽 주식을 매수했다”고 밝혔다. “뉴욕 증시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으니 유럽 비중을 늘릴 때”라는 모건스탠리 등 일부 기관들의 조언과 궤를 같이 한다. 그는 이어 “(돈 풀기로) 장기적으로 달러화 가치는 하락할 것”이라며 “약(弱)달러가 당장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만약 그런 신호가 나타난다면 신흥국 주식 매입을 추천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