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의 강령, 당헌·당규는 위헌인가
법무부는 진보당의 강령이 과거 김일성이 건국이념으로 내세운 ‘진보적 민주주의’를 도입했다고 강조한다. 김일성은 1945년 10월 평양노농정치학교 학생들 앞에서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하여’란 주제로 “진보적 민주주의가 인민에게 자유·권리를 주고 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보장한다”는 강연을 한 바 있다.
진보당의 주장은 다르다. 자신들이 말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김일성의 그것과 이름만 같을 뿐 선거제도와 사적소유, 시장경제제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 진보당 강령 1항은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 구조를 확립하고 국가권력기구를 민주적으로 개편한다’며 민주주의 이념을 긍정하는데서 시작한다. 또 12항은 ‘독점재벌 중심 경제 체제를 해체하고, 중소기업 및 영세 자영업자를 보호 육성함으로써 경제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내수 중소기업 주도형 경제체제를 강화한다’고 돼있다.
보수학자로 분류되는 이재교 변호사는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 “법무부가 청구한 청구서를 보면 강령이나 당헌에도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했다고 나오나 거기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진보당의 강령에 대한 해석보다는 이석기 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가 핵심 변수로 지목한다. 법무부가 진보당 활동의 위헌성 판단 근거로 드는 것이 북한의 ‘강온 양면 전술’ 추종이기 때문이다. 양면 전술이란 ‘혁명 준비기에는 혁명 역량을 축적하면서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는 폭력과 비폭력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한민국의 전복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의 RO(혁명조직)도 그 활동 중 하나이며 진보당이 RO 활동을 조직적으로 비호했다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이에 현재 재판 중인 이 사건을 근거로 진보당의 활동을 위헌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반론이 제기된다. 우리나라 헌법은 재판 결과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해산심판은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민주주의가 자신을 방어하는 제도라는 점을 들어 이같은 적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설사 이 의원의 혐의가 유죄로 판결난다고 하더라도 RO활동을 진보당의 활동으로 일치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진보당 당원 5만여명 중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는 7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보당 역시 “일부 당원들의 활동을 문제삼아 정당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정치적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진보당 의원직도 상실돼야 하나
법무부는 진보당의 정당해산과 함께 의원직 상실청구도 요청했다. 그러나 헌법에는 국회의원의 자격과 관련한 법 규정도 없고 전례 역시 없다. 국회의원은 정당의 대표자가 아닌 국민의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각에서 “헌재가 이를 심판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검토와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정당은 정당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대다수의 유권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가이드라인이기도 하다. 특히 비례대표의 경우 정당 투표제로 선출되기 때문에, 정당이 해산되면 의원 자격 역시 상실될 가능성이 크다. 이경우 재판 중인 이 의원을 포함, 김재연 의원 역시 해당된다.
만약 헌재가 의원자격은 판단하지 않은 채, 진보당에 대해 해산명령만 내릴 경우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올 전망이다. 현실적으로 정당이 위헌판결을 받은 과정에서 그 당에 ‘속했던’ 의원들에 대한 자격 여부 논란이 나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해당 의원들은 국회 윤리특위의 자격심사에서 최종판결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