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김에 흔들리는 카드 수수료율 체계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 11월 연매출 3억원 아래인 영세·중소가맹점에 적용되는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0.7%포인트, 연매출 3억~10억원대인 일반가맹점은 평균 0.3%포인트 각각 낮췄다. 기준금리 하락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 감소로 카드사들이 수수료율을 낮출 여지(6700억원)가 생겼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논란은 지난해 12월말 카드사들이 전체 가맹점의 10% 수준인 25만여곳 가맹점에 수수료율 인상을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카드결제가 잦은 약국·슈퍼마켓·편의점 업종이 수수료 인상 통보를 받았다. 이들 가맹점은 애초 정부 발표와 다르다며 곧장 국회로 달려갔다. 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최대 성과로 내세우며 거리 곳곳에 현수막까지 걸며 홍보에 열을 올렸던 정치권은 곧바로 수수료 인상 대책 방안을 금융당국에 요청했다. 야당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해 2.5%로 내려간 최고 수수료율을 2.3%로 추가로 내리고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가맹점 대상을 매출 5억원 이하로 확대하자며 당국과 카드업계를 압박했다. 정부가 수수료율을 결정하는 영세·중소가맹점과 달리 일반가맹점은 카드사들이 가맹점과의 사적 계약에 따라 수수료율을 결정짓게 돼 있지만 정치권은 이런 원칙은 제쳐놓고 수수료 인하부터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가맹점 카드수납 의무화 폐지도 고려해야”
카드수수료율을 둘러싸고 카드사와 가맹점 간 갈등이 본격화된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사람들이 물건값을 치를 때 현금 대신 신용카드를 꺼내는 비율이 늘어나면서 수수료 부담이 커진 가맹점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표를 의식한 국회가 가세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정치권이 영세가맹점에만 초점을 맞춰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면서 정작 결함이 있는 카드 수수료율 체계를 손질하는 일은 2012년이 돼서야 진행됐기 때문이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땐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하고 이 목적을 달성하면 시장에 과감히 맡겨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 보니 결국 원칙이 무너지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국회가 압력을 넣고 정부가 눈치를 보면서 시장에 개입하면 금융은 발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수료율을 둘러싼 시장 실패를 최소화하려면 카드가맹점에 대한 권한이 더 주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연매출 2400만원이 넘는 가맹점은 의무적으로 카드가맹점으로 등록해야 한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은 정부가 모든 가맹점이 카드가맹점으로 등록하도록 하면서 수수료율은 정부가 정하다 보니 협상력이 낮은 중소·일반가맹점들 사이에서 불만이 생기는 것”이라며 “정부가 수수료 산정 때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가맹점의 카드수납제 의무화는 없앨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