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11만명 뿔뿔이 잠적.."추운 겨울"

  • 등록 2003-11-13 오후 8:08:50

    수정 2003-11-13 오후 8:08:50

[조선일보 제공] 국내에서 불법 체류해온 외국인 노동자 11만명이 ‘집단 잠적’에 들어갔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 도입으로 오는 17일부터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앞두고, 국내에 4년 이상 체류하거나 밀입국한 불법체류자들이 지방으로 숨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법무부와 경찰, 노동부 등 정부합동 단속반은 내년 6월까지 전국 50개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단속을 실시할 예정이다. 대상은 4년 이하 체류 외국인 중 정부에 합법화신고를 포기한 3만7000여명과, 4년 이상 체류노동자와 밀입국자 7만5000여명 등 총 11만2000여명이다.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된 경기도 안산과 서울 가리봉동, 사당동 등에는 단속을 피해 외국인들이 빠져나가면서 거리가 썰렁하다. 지난달 중순부터 거주지를 떠난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은 ‘일정 기간’ 철저히 숨어 지낼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서울 구로구에서 생활했던 중국동포 최모(여)씨는 지난주 경북지역으로 내려갔다. 5년 전 한국에 온 그녀는 “한국에 와서 고생한 것이 아까워서 도저히 못 돌아가겠다”며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매일 밤 경상도 사투리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까지 서울 사당동에서 생활한 한국생활 6년째인 중국동포 박모씨도 단속을 피해 충남지역으로 갔다. 박씨의 부인은 한국에 온 지 3년밖에 되지 않아 합법체류자이지만 박씨는 입국한 지 4년이 넘어 단속대상이다. 부인이 보고 싶을 때가 많지만 서울에 올라갔다가 혹시 경찰에 붙잡힐까봐 지방에 온 이후 한번도 찾아가지 않고 있다. 박씨는 “이제 겨우 빚을 청산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며 “중국에 있는 아들 학비를 벌기 위해선 위험을 무릅쓰고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설현장에서 일당 10만원을 받고 ‘막일’을 하고 건설현장 컨테이너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동료들에게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이 들통날까봐 가급적 대화도 줄인다고 했다. 실제로 정부는 “제한된 인원으로 불법체류자 전부를 단속해 강제 출국시키기는 어렵다”며 “내년 6월까지 2만명 정도를 단속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대신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자진귀국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를 처벌하게 되면 잠적한 외국인 근로자들의 취업문은 사실상 봉쇄되며, 그렇게 몇달 지나면 잠적생활을 견디지 못해 자진 귀국하겠다는 외국인들이 조금씩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자진귀국 불법체류 외국인은 출국기간(11월15일)이 지나도 항공권만 소지하고 공항에 나오면 범칙금 없이 출국조치시킬 방침이다. 전북대 설동훈 교수는 “불법체류자들이 취업이 안 되고 생계가 어려워지면 자해를 저지르거나 생계형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며 “숨어 지내는 생활이 1~2주라면 버틸 수 있겠지만 장기화된다면 일탈행동 등 사회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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