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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매주 주말마다 열리는 노란조끼 집회를 멈추기 위해 소득세 인하 카드를 꺼내들었다. 다만 “일을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대국민 TV담화를 통해 중산층 노동자들을 위한 감세정책을 제안하며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득세를 대폭 내리려고 한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이어 “소득세를 인하하는 대신 조세감면은 줄이도록 내각에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세금감면 혜택을 받는 대상은 줄여 소득세 축소에 따른 세수 감소(50억유로·약 6조4700억원 추정)를 메우겠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소득세 감면에 따른 세수 결손을 채우려면 국민들은 더 많이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주말마다 이어진 노란조끼 시위에 대한 대응책이다. 노란조끼 운동은 부자들과 기업들의 세금은 내리면서, 서민 세금인 유류세를 인상한 마크롱 정부에 반발해 시작됐다.
앞서 마크롱 행정부는 지난해 말 유류세 인상 계획을 철회하고,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 최저임금 인상 등 당근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위는 더 격화됐고 마크롱 대통령은 결국 “국민의견을 더 많이 듣겠다”면서 지난 1월 15일부터 “두 달간 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 노란조끼 시위대 요구 사안 중 하나인 직접민주주의 참여 확대에 대해 “민주주의 차원에서 시민들이 더 많이 참여하기를 원한다”면서 긍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아울러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 정부에 일부 넘기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노란조끼 운동의 시발점이 된 부유세 부활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부유세는 축소한 것이 아니라 완화한 것이며, 부자들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투자를 자극하기 위한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전반적으로는 노란조끼 시위대와 국민들의 뜻을 수용했으나 핵심 요구사항인 부유세 부활 요구를 거절해 반발을 잠재울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는 관측이다.
한편 이날 연설에서는 국립행정학교(에나·ENA)를 폐지하겠다는 구상이 특히 주목을 끌었다. 에나는 프랑스 정계, 행정부, 재계 엘리트를 배출해온 명문 그랑제콜(소수정예 특수대학)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신분, 배경과 무관하게 국가 관료 엘리트(테크노크라트)를 육성한다는 목표로 설립됐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 전반에 ‘에나크’라는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 프랑스 사회의 엘리트주의와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권력과 자본이 에나 출신 인사들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탓이다.
그 역시 에나 출신인 마크롱 대통령은 “고위 공무원 제도를 개혁할 것”이라며 “더이상 능력 본위 시스템이 아닌데다, 공직자를 평생 고용할 필요성도 없다. 에나를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에나 대신 국가 공무원 전반을 육성하는 새로운 교육기관을 출범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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