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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10시 50분쯤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국민안전처가 오전 11시부터 폭염경보를 발효한다는 긴급재난문자였다. 스마트폰에는 ‘12~17시 노약자는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물을 자주 마시기 바란다’는 글이 떴다.
서울 낮 기온이 35.7도까지 오르며 첫 폭염경보가 내려진 이날 시민들은 가마솥더위와 사투를 벌였다. 대형서점과 쇼핑몰은 불볕더위를 피하려는 시민들로 가득했고 어르신들은 쉼터로 몰려들었다. 쪽방촌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저 무더위에 무기력할 뿐이었다.
평일 대형서점·쇼핑몰에 시민들 발길 이어져
서울 영등포역 인근 복합 쇼핑몰 ‘타임스퀘어’는 평일 낮 시간인 데도 더위를 피해 쇼핑과 문화생활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매장 2층 교보문고에 들어가니 서적 진열대 사이사이는 책을 읽는 사람들고 발디딜 틈이 없었다. 취업준비생 한모(25·여)씨는 “취업 준비 관련 서적도 살 겸 머리를 식히러 왔다”며 “집에서 에어컨을 켜놓고 있기엔 눈치가 보이고 카페는 너무 시끄러운데 서점은 조용하고 시원해서 피서 장소로 딱 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교보문고 타임스퀘어점 관계자는 “시원한데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도 읽을 수 있어 서점에 오래 머무는 고객들이 많아졌다”며 “다른 고객들에게 불편을 주거나 책을 훼손하지 않는 이상 딱히 제재하고 있진 않다”고 설명했다.
더위를 피해 백화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백화점 매출도 높아지는 추세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2013년 13.8%였던 휴가철 매출 비중이 지난해 16.1%까지 올랐는데 올해는 특히 더 더워 매출 비중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20·30대를 중심으로 도심에서 피서를 즐기는 ‘씨티 바캉스’족(族)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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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역 인근 대형 쇼핑몰을 나와 역전파출소 주위로 걸어가니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좁은 골목길과 슬레이트 지붕을 켜켜이 얹은 ‘영등포 쪽방촌’엔 무더운 공기 속에 시큼한 냄새가 감돌았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통로 양 옆엔 허리를 한껏 숙여야 들어갈 법한 작은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총 67동의 쪽방 건물에 600명 정도가 살고 있는 이곳 주민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고령자들. 무더가 절정에 이른 오후 2시 쪽방 앞 간이 의자에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던 80대 할머니, 땀을 뻘뻘 흘리며 평상에서 장기를 두는 노인 등 방 안에 있는 주민은 거의 없었다. 집집마다 쪽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영등포 쪽방 상담소는 폭염에 시달리는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인근 교회에 ‘무더위 쉼터’를 마련해 운영 중이다. 하루 종일 에어컨이 가동되고 각종 생활용품, 텔레비전 등을 구비하고 있어 쪽방촌 주민들에겐 ‘지상 낙원’같은 피서지다.
다른 쪽방촌 주민 최모(72·여)씨는 “쉼터에 사람이 많을 땐 지하철을 타러 간다”며 “나이 들어 좋은 점은 무료이기 때문”이라며 “1호선을 타고 쭉 한바퀴 돌면 그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방 안은 숨조차 쉬기 어려워 마음 놓고 더위를 피할 곳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쪽방 상담소 관계자는 “각종 민간단체들이 가정용 냉방용품을 지원하고 있지만 부족한 실정”이라며 “특히 홀로 생활하는 어르신들은 폭염에 취약해 수시로 순찰을 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