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상장폐지 '더 신중하게'…장기 거래정지 우려도(종합)

''이의제기''로 기업 목소리 듣고 투자자 보호 확대
획일적 잣대 낮추고 계속성·미래사업성 위주 강화
기업, 실질심사 묶이며 거래정지 장기화 우려도
"회생가능성과 투자자보호 양면 모두 고려할 것"
  • 등록 2022-10-04 오후 4:13:42

    수정 2022-10-04 오후 4:13:42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거래가 정지된 후 잠을 설칩니다. 4년 전에 상장폐지를 한 번 겪었는데 정리매매에서 10%도 못 건졌어요. 지금은 수익을 못 내도 기회를 주면 그래도 잘 될 기업 같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개미투자자들을 울게 만드는 상장폐지 규정이 강화된다. 한국거래소는 “기업 회생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해 상장폐지 결정이 이뤄지고 투자자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상장폐지 요건과 절차를 정비하겠다”라고 4일 밝혔다.

이제까지 2년 연속 자본잠식률이 50% 이상이거나 2년 연속 매출액이 50억원 미만인 코스피 종목 등 재무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은 소명 기회도 없이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됐다. 하지만 획일적으로 과거 재무수치 기준을 적용하는게 무리하다고 판단, 기업 회생가능성이나 사업성 등 미래를 고려해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또 상장폐지 사유에 대해 기업이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개선 기간도 주어진다. 현재 정기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거래량 미달 등에 해당하면 즉시 상장폐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기보고서 미제출 사유는 해외 자회사 실사 지연 등으로 제출기한을 넘기는 기업이 있을 수 있는 만큼 구제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거래량 미달도 유동성 공급계약 체결 등 개선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업이 이의신청을 할 경우 기업심사위원회(코스피는 상장공시위원회)가 개선기간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중복적 성격의 상장폐지요건을 없애는 등 상장폐지 요건도 바뀐다. 유가증권 시장의 경우 ‘주가 미달’(액면가의 20% 미만), 코스닥 시장의 5년 연속 영업손실 및 2년 연속 내부회계 비적정 등 다른 상장폐지 요건과 겹치는 항목이 삭제된다.

투자자 보호의 실효성은 적은 반면 상장 기업의 부담은 높은 상장폐지요건도 일부 바뀐다. 코스닥 시장의 경우 자본잠식 등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상장폐지 적용기준이 반기 단위에서 연 단위로 변경된다. 다만, 반기 단위 자본잠식 등이 발생하면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키로 했다.

또 횡령 등 실질심사 사유가 확인된 시점에서 5년 이상 경과했더라도 실질심사를 받았다면, 앞으로는 기업 상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면 심사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거래소의 조치에 투자자들은 일단 환영하는 모습이다. 상장폐지는 투자자들의 가장 큰 적이기도 하다. 상장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면 정리매매 기회는 주어지지만 주가는 폭락해 사실상 큰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 주식 시장 상장폐지를 손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작년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된 종목(자진 상장폐지나 피흡수합병, 코스피 이전상장, 스팩, 선박투자회사 등은 제외)은 20곳이다. 2018년 15개에서 2019년 4개로 급감했다가 2020년 15개, 지난해 20개로 늘었다. 2018년 말부터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이 시행되면서 회계법인의 감사가 깐깐해지기 시작했고 이후 2020년부터 상장사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상장폐지 대신 실질심사와 이에 따른 거래정지가 오히려 ‘좀비기업’을 양산하고 투자자들의 피해를 확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거래정지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거래정지가 장기화하면 개인 재산을 자유롭게 처분하고 거래할 수 있는 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는 만큼 1년 이상 지연되는 거래정지에 대해선 (상장폐지 여부를 빨리 결정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다.

거래소 측도 “실질심사 확대로 퇴출절차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고 있다”면서 “향후 기업회생 가능성과 투자자 보호라는 양 측면을 충분히 고려해 신속한 의사 결정이 이뤄지도록 제도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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