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셰익스피어가 남긴 마지막 비극 ‘코리올라누스’는 로마 시대의 영웅이면서 동시에 비운의 운명을 살았던 코리올라누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신념에 대한 강한 확신을 지녔으나, 그 확신이 오히려 오만함이 돼 비극을 맞게 되는 인물이다.
| 연극 ‘코리올라누스’의 한 장면(사진=LG아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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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코리올라누스’는 바로 이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무대에 올린다. 중간 휴식시간을 포함해 공연시간 3시간 20분에 달하는 대작이지만 지루함을 느끼기 힘들다. 잘 만든 정치드라마 장르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강한 몰입도를 자랑한다.
작품은 가난에 허덕이다 폭동을 일으키게 된 로마 시민들의 시위로 막을 연다. 깃발과 화염병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배우들이 객석 뒤편에서 우르르 몰려나오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로마 한 가운데 서 있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시민들은 마르티우스 장군이 자신의 편이 돼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마르티우스는 오히려 시민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시위대를 해산시킨다.
때마침 로마를 호시탐탐 노리던 볼스키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마르티우스는 단번에 볼스키족을 제압하고 영웅이 된다. 귀족들은 마르티우스의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코리올라누스’라는 이름을 내리고, 코리올라누스는 로마를 다스릴 집정관 후보가 된다. 그러나 시민을 대표하는 호민관들은 코리올라누스가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할 것이라고 판단해 그를 로마에서 추방시킬 음모를 꾸민다. 코리올라누스의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 연극 ‘코리올라누스’의 한 장면(사진=LG아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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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양정웅 연출은 특유의 미장센으로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인다. 하얀 의상의 로마 귀족들, 검은 의상의 볼스키족, 그리고 회색빛 옷을 입은 시민들을 통해 흑백 느와르 영화 같은 시각적 효과를 연출해낸다. 회색빛의 어두운 벙커를 차용한 무대, 경찰 진압대와 테러범을 연상케 하는 로마군과 볼스키군의 대립도 기존 연극에서 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포장은 한껏 세련되지만 스토리는 셰익스피어 원작에 충실하다. 그러면서도 작품이 담고 있는 정치 권력의 대립과 갈등이 현대 사회의 단면과도 같아 묘한 공감대를 자아낸다. 코리올라누스를 추방하기 위한 호민관의 음모는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여론전과 닮아 있다. 자신의 신념에 갇힌 나머지 오만함에 빠진 코리올라누스는 촉망받던 정치인이 어떻게 무능함에 빠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배우 남윤호가 코리올라누스 역으로 오랜만에 국내 무대에 돌아와 강인한 남성미로 객석을 압도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한윤춘, 김도완, 김대진, 한상훈, 김진곤 등 출연진의 호흡도 뻬어나다. 밴드 이날치의 장영규 음악감독이 만든 앰비언트 사운드가 비극을 한층 더 절제되고 세련되게 이끈다. 공연은 오는 15일까지.
| 연극 ‘코리올라누스’의 한 장면(사진=LG아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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