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투자은행(IB) 및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주당 83만원에서 89만원으로 인상했다. 공개매수 수량도 기존 372만6591주에서 414만657주(발행주식 총수의 18.0%→20.0%)으로 늘렸다. 함께 진행 중인 영풍정밀 공개매수 가격도 주당 3만원에서 3만 5000원으로 높였다. 영풍정밀 공개매수 수량은 기존과 동일하다.
이번 가격 상향으로 고려아연이 공개매수에 투입하는 자금은 3조 3623억원으로 늘었다. 자사주 공개매수에 3조 2245억원, 영풍정밀 공개매수에 1378억원을 각각 투입한다. 공개매수 규모가 늘면서 KB증권이 주관사로 새롭게 합류했다. KB증권은 미래에셋증권(자사주 공개매수), 하나증권(영풍정밀 공개매수)과 함께 주관 업무를 돕는다.
앞서 가격 동결을 선언한 MBK파트너스·영풍 측은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가격 상향에 강하게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MBK·영풍은 “증액된 공개매수 규모인 3조2000억원은 고려아연의 지난 5년간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의 97.1%, 3년간 당기순이익의 152.5%, 자기자본의 33%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라며 “이 금액을 최윤범 회장의 지위 보전을 위해 사용하는 건 최대주주로서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MBK·영풍 측은 별도의 가격 변경 없이 예정된 공개매수 일정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고려아연은 주당 83만원, 영풍정밀은 주당 3만원의 가격이다. MBK·영풍 측 공개매수는 오는 14일 오후 3시 30분까지 주관사인 NH투자증권을 통해 진행된다.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가격 인상에도 양측은 서로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이번 공개매수는 법적으로 철회가 불가능하다”며 “14일 종료되는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결과와 상관없이 23일까지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0일에는 “자사주 공개매수와 소각을 반드시 완료하겠다”며 공개매수 성공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MBK·영풍 역시 공개매수 가격 인상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모습이다. 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은 주당 6만원 차이로 벌어졌지만, 세금 차이(15%)를 고려하면 해외 기관들이 MBK·영풍 측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 수량을 늘리면서 인덱스 펀드(패시브)가 청약에 응할 확률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패시브 펀드까지 들어오면 가처분 등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최 회장 측 자사주 공개매수보다는 가격 차이가 크지 않고 세금 부분에서 유리한 MBK·영풍 측에 청약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분쟁 끝나면 주가 회귀…‘승자의 저주’ 우려 커진다
고려아연이 이번 공개매수에 투입하는 3조 2245억원 가운데 실제 투입하는 자기자금은 5700억원에 그친다. 나머지 2조 6545억원은 메리츠금융(1조원)과 하나·SC제일은행(1조 6545억원)에서 조달한다. 주당 83만원 당시 제시했던 차입금 규모(2조 1635억원)에서 4910억원이 더 늘었다. 또 KB증권을 공개매수 주관사로 추가하면서 이로 인한 수수료 부담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고려아연 백기사로 나선 베인캐피탈의 투입 자금이 늘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베인캐피탈은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자기자금 921억원, 차입금 3685억원 등 총 4606억원을 투입한다. 당초 투입 자금 4296억원(자기자금 859억, 차입금 3437억)보다 300억원 가량이 늘었다. 수익 실현이 중요한 사모펀드의 특성을 감안하면 몰취 조항 등이 설정됐을 가능성이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이번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관들의 선택이다. 기관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승자가 결정될 것”이라며 “금융감독원의 조사도 진행되고 있고, 양측의 소송전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만큼 공개매수 결과와 별도로 분쟁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