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오전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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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지켜봅시다.”(We will se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본토타격’까지 운운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1일 신년사에 대해 즉답을 피했다. 지난해 12월31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새해맞이 행사에서다. 백악관뿐만 아니라 국무부와 국방부도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미 국무부의 한 관리는 1일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한 논평 요청에 “우리는 북한에 대한 일치된 대응과 관련해 한국과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다”고 짧게 언급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2일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마치 폭주기관차처럼 북한을 겨냥했던 미국이 일단 남북 간 대화를 지켜보는 것으로 정책 방향을 튼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이 김정은의 신년사를 계기로 북핵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잠시나마 우리 정부에 양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후 청와대 관저에서 ‘나라답게 정의롭게 국민과의 전화통화’의 시간을 갖고 대상자와 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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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험대 오른 文의 ‘한반도 운전자론’ 외교가와 미국 조야에선 미국 정부가 북미 간 대화가 요원한 만큼 북핵문제의 키를 당분간 한국 측에 넘겨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남북관계 회복을 통해 대북제대 연대에 구멍을 내고 향후 북미 대화에서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북한의 의도와 남북 대화를 통해 북한의 의중을 떠보겠다는 미국의 전략이 일부 맞아떨어졌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교통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입장에선)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이제 경제에 방점이 찍히는 그런 대내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서 미북대화를 만들어 나가야 되는 그런 상황”이라며 “(미 측도) 남북대화를 통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화의 어떤 모멘텀이 조성된다면 나쁠 것이 없다.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의반타의반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시험대에 오른 셈이 됐다. 문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에서 김정은의 평창 겨울올림픽 대표단 파견 의사와 관해 “우리 제의에 호응한 것으로 평가하며 환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 “남북 대화를 신속히 복원하고 북한대표단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후속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달라”고 지시했고, 외교부에는 “남북관계 개선이 북핵문제 해결과 따로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친 할 수 있도록 우방국과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하기 바란다”고 주문하는 등 운전자론의 시동을 켰다. 당장 통일부는 “정부는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고위급 남북당국간 회담을 제의한다”(조명균 장관)고 밝혔다.
운전자론을 펼 시기는 북한 정권수립일인 9.9절까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새해는 우리 인민이 공화국 창건 70돌을 대경사로 기념하게 되고, 남한에서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것으로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있는 해”라고 말했다는 점에서다. 한 대북전문가는 “남과 북 모두에서 칠순잔치는 특별하게 여긴다”며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2월부터 9.9절이 있는 9월까지는 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봤다. 이와 관련,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으로선 내년 9월까지 남북대화는 물론 북미 간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된 셈”이라고 봤다.
| 뉴욕 맨해튼 중심가 타임스 스퀘어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광고가 등장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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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무언의 경고..문제는 ‘속도’와 ‘깊이’미국 측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는 분석이다. 잘하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북 대화가 북한의 핵동결은 아니더라도 도발중단 선언 정도라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로선 꽤나 성공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란 사태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11월 하원의원 전체와 6년 임기의 상원의원 중 3분의 1을 뽑는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미국 조야에선 공화당의 완패를 점치는 가운데 대북문제가 적지 않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문제는 운전자론의 속도와 깊이다. 섣부르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교류가 이뤄질 경우 미국이 총대를 멘 국제사회의 대북공조에 구멍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더 나아가 한미 연합훈련 중단, 한미동맹 해체, 평화협정 체결 등 더 세게 무리한 요구를 해올 것일 자명한 상황이다. 긴밀한 한미공조를 바탕으로 남북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미국의 ‘관망’적 자세의 배경에는 김정은이 한·미 동맹을 넘어 국제사회의 대북공조체제 균열을 도모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정부는) 수용할 것은 수용하되,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방식으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침묵은 북한과의 대화에 임할 때 긴밀한 공조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며 “북한의 이간질 시도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일종이 무언의 ‘경고’성 메시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