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책임 리더십' 주목…위기 정면돌파

생애 최초 기자회견 첫 마디 "머리 숙여 사죄"
솔직한 사과, 신속한 대응으로 사태 수습 주력
그룹 차원 대혁신 예고, 위기극복 역량에 주목
  • 등록 2015-06-23 오후 5:26:05

    수정 2015-06-23 오후 5:43:49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삼성 서초사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한대욱 기자
[이데일리 이재호 장종원 오희나 기자] 지난 1991년 삼성그룹에 처음 입사한 뒤 24년 만에 처음으로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첫 마디는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였다.

삼성서울병원의 초기 대응 실패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국내에 급격히 확산된 데 따른 대국민 사과였다. 기자회견이 열린 23일은 공교롭게도 이 부회장의 47번째 생일이었다.

국민들을 향한 첫 공식 입장으로 사과문을 발표하는 데 대해 이 부회장 자신은 물론 삼성 수뇌부는 고심을 거듭했다. 하지만 정면돌파를 통해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난해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사실상 삼성을 이끌어 온 이 부회장이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위기속 ‘책임지는 리더십’을 통해 주목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삼성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진행된 메르스 사태 관련 기자회견에서 “환자 분들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 드리겠다”며 “메르스 사태가 이른 시일 내에 완전히 해결되도록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사과문을 읽는 내내 목소리는 결연했고, 사태 수습에 대한 단호한 의지도 보여줬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맡아 왔던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자리를 물려받으며 그룹의 새 수장이라는 상징성을 확보했다.

이달 1일에는 호암상 시상식을 주재하는 등 이 회장의 빈 자리를 조금씩 채워 나가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삼성의 새 얼굴로 첫 발을 내딛는 시점에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룹 이미지 추락은 물론 향후 경영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000830)제일모직(028260)의 합병 여부를 놓고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벌이고 있는 소송전이 경영권 분쟁으로 인식되면서 메르스 사태와 결부돼 삼성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행보다.

삼성은 선대로부터 솔직한 사과와 반성, 신속한 대응책 마련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은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자 한국비료 지분과 운영권을 국가에 넘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 회장도 2005년(안기부 X파일 사건)과 2008년(비자금 사건) 등 두 차례에 걸쳐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이 회장은 사재를 국가에 헌납하고 일시적으로 경영권을 내려놓는 등의 조치를 취했으며, 무엇보다 삼성을 글로벌 일류기업 반열에 올려놓으면서 국민들의 용서를 이끌어냈다.

이 부회장은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을 약속했다. 삼성의 변화는 삼성서울병원을 넘어 그룹 차원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메르스 및 엘리엇 사태를 겪으면서 삼성의 위기대응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공식적으로 혁신 의지를 밝힌 만큼 조만간 대대적인 정비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이재용 체제도 더욱 안정감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사과문 발표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한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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