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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인은 강서구 PC방 살인 피의자가 우울증약을 복용중이라며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 등을 이유로 한 감형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강서구 PC방 살인 피의자인 김성수(29)씨가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법원은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량을 줄여줄 때 평소 정신질환 등으로 치료 받았는지가 아닌 범죄를 저지를 당시 심신상태가 어땠는지를 보고 판단한다.
형법 10조를 보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돼 있다. 이는 ‘책임 없는 자에게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는 형벌 책임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법에는 사물을 변별한 능력 등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다. 심신미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론과 판례에 의존하고 있다.
보통 실무상 심신미약 상태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우는 조현병(정신분열증), 지적장애, 음주나 마약 등의 약물복용 상태 정도다.
가령 2008년 당시 8세 여아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두순 사건은 음주에 따른 주취감경이 적용됐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범행 때 조두순이 만취해 사물을 변별하기 어려웠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또한 2016년 공용화장실에서 처음 본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도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조현병 등 심신미약을 이유로 징역 30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심신미약에 따른 감형을 받기 위해서는 범행 당시 상태가 중요하다. 단순히 정신질환 병력이 있다고 심신미약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통상 형사상 범행은 사람을 제압하면서 이뤄진다. 따라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과 같이 움직이고 있는 피해자를 범행 대상으로 지정하고 제압해 범행을 저질렀다면 사물에 대한 변별력이 없는 경우라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무에서 가장 대표적인 심신미약이라고 인정되는 경우는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자다 잠결에 아이가 깔려 죽게 된 경우 정도다. 예전에는 주로 음주에 따른 주취감형이 많았지만 이에 대한 비난이 커져 주취감형은 줄고 있다.
심신미약 인정비율 5건 중 1건 꼴
앞의 판사 출신 변호사는 “거의 심신상실에 가까운 상태가 돼야 심신미약 상태로 인정이 된다”며 “피고인이나 변호인은 곧잘 심신미약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는 비율은 낮다”고 말했다.
판사들은 심신미약을 판단할 때 정신과 전문의 등 전문가의 감정 의견을 기초로 판단한다. 다만 이에 구속되지 않고 최종 결정은 스스로 법률적 판단으로 내린다.
보통 정신감정은 치료감호소 등에서 한달 정도 추적관찰(감정유치)을 통해 진행한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씨도 이날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로 이송돼 길게는 1개월 동안 정신 감정을 받게 된다.
재판에서는 전문가들의 감정 의견 뿐만아니라 범행의 계획성 여부, 범행 이후의 과정 등도 심신미약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사들은 범행이 사전에 계획됐는지와 범행과정 자체가 치밀하게 이뤄졌는지, 범행 이후의 은폐가 이뤄졌는지, 범행 당시에 대한 피고인 진술이 어떠한지 등을 살핀다”고 설명했다.
계획적인 범행은 심신미약 상태 범행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딸의 친구를 유인해서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36)도 심신미약 상태 범행이라 주장했지만, 1·2심 법원은 계획적인 범행이라고 일축했다.
또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범행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진술하면 범행 당시 사물에 대해 분별할 능력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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