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전 국방위원장의 ‘책사’이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브레인’이었던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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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당시 북측 고위급 실세 3인방의 일원으로 방한하기도 했던 그는 우리 국민에게도 익숙한 북측 고위급 실세다.
김양건이 대남사업의 전면에 나선 것은 통일전선부 부장으로 임명된 2007년 초다. 우리로 치면 통일부 장관에 해당한다. 대남업무를 총괄한 지 불과 6개월도 되지 않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2009년 8월에는 고 김대중 대통령 조문을 위해 북측 사절단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을 때나, 천안함 폭침과 개성공단 페쇄·재가동 등으로 남북간에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도 북측 대남 라인을 전두지휘했다.
우리 정부에 있어 대북 정책이 그렇듯 북한에도 대남 사업은 중요한 국내 정치 문제이자, 민감한 외교 사안이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권력이 승계되고 남한의 정권도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김양건은 격동의 시절을 보내면서도 그 자리를 오히려 굳건히 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양건을 일컬어 ‘달변가’, ‘전략가’라고 칭한다. 차분하게 능수능란한 화술을 구사하면서도 좀처럼 본인의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 노회한 협상가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양건이 협상에 임할 때 상대방의 경력과 성향은 물론 어떤 술을 좋아하는지까지 다 꿰고 나간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한마디로 상대하는 쪽에서는 다루기 힘들고 쓰는 쪽에서는 믿고 맡길 수 있는 ‘내공’ 있는 일꾼이라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대남 라인이 잇따라 숙청되는 과정에서도 김 비서의 약진은 계속됐다. 올해 2월에는 노동당의 노선과 정책, 주요인사 등을 결정하는 핵심기구인 정치국 위원으로 올라섰다.
북한에서는 2013년 리제강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009년 리철봉 노동당위원회 책임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002년 김용순 대남 담당비서와 부인 등이 모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전처인 고영희도 2003년에 교통사고로 숨졌다.
북한 보도에 따르면 김양건이 사망한 시점은 오전 6시15분(평양시간)이지만, 정확한 사고 시점과 장소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정은 체제 들어서는 북한 고위층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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