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이식 17개월 만에 사망…다시 거리에 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또 사망
SK서린빌딩·옥시 본사 앞 등 돌며 추모
"진상규명과 가해기업 처벌, 피해 보상"
  • 등록 2021-11-23 오후 4:44:48

    수정 2021-11-23 오후 8:33:44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우리 아버지 살려내”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고(故) 김응익씨 유족은 23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앞에서 항의했다. 가습기살균제 제품 사용으로 폐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김씨는 운 좋게 폐 이식을 받았지만, 1년 5개월 만인 지난 21일 합병증 등으로 사망했다. 이날 유족들은 삼일장을 마치고 장지인 충남 서산으로 향하기 전 상복차림으로 기자회견 발언대에서 마이크를 쥐었다. 영정 사진과 건강 악화로 고인이 생전 사용했던 휠체어와 이동식 대소변기·보행기가 자리를 함께했다.

23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로 사망한 고(故) 김응익씨 유족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이소현 기자)
고인의 유족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버지가 생전에 사과 한마디를 듣기 위해 이곳에 휠체어를 끌고 혼자 오셨다”며 “지난해 폐 이식 수술로 생긴 흉터를 드러내고 외쳤지만, 아직 바뀐 것이 없다는 현실이 원망스럽다”고 토로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공론화 10년을 앞두고도 배상과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고인은 지난 8월 17일 SK서린빌딩 앞에서 상의를 벗어 흉터를 내보이며 피해를 온몸으로 드러냈다. 당시 김씨는 “피해자들이 10년 넘도록 고통받고 있다“며 “살아 있을 때 해결되는 걸 보고 싶다”고 호소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10주기 비상행동(가습기살균제 비상행동)에 따르면 김씨는 1997년부터 2011년 이후까지 15년 이상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사용했다. 2016년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난 뒤 정부에 피해 신고를 했지만, 폐 손상 판정 결과 4단계(관계없음)로 나왔다. 재검사에도 피해를 공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김씨는 지난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 개정되고 나서야 겨우 공식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배·보상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가습기살균제 비상행동은 “결국 세상을 떠난 지금 이 순간까지 김씨와 유족들은 단 한 푼의 배·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응익씨가 8월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앞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 형사처벌 및 책임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날 김씨 유족 측은 SK서린빌딩을 거쳐 배·보상조정위원회가 있는 광화문 교보빌딩, 정부 서울청사, 여의도에 있는 옥시(현 레킷) 본사 앞을 돌며, 고인을 추모했으며,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과 가해기업 처벌, 제대로 된 배·보상 등을 촉구했다.

가습기살균제 비상행동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진상규명부터 가해기업 처벌, 피해 배·보상,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이르기까지 무엇하나 제대로 마무리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지난 1월 가습기살균제 제품 제조·유통사인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가 1심 판결에서 무죄를 받으면서 피해자들은 법적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마저 꺾였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당선 직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했고, 피해자 지원 확대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한 바 있다.

사회적 참사 특조위는 2019년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95만명이며, 사망자는 2만366명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정부가 공식 인정한 피해자는 지난달 31일 기준 7598명이며, 이 중 사망자는 1724명이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2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이 중 10분의 1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으며, △SK, 애경, 이마트 등 가해 기업의 단죄 △배·보상조정위원회의 배·보상안 제시 △차기 정부 대통령 후보들의 가습기살균제 재발 방지 공약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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