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 차별 고착화…약자 혐오 강화"

국제앰네스티 세계인권현황 연례인권보고서 발표
"韓 팬데믹 속 배제·차별 늘어…젠더 폭력 여전"
"北 백신 소외, 사실상 감금 등 인권침해 심각"
  • 등록 2022-03-29 오후 3:23:31

    수정 2022-03-29 오후 3:23:31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우리 사회에서 차별은 굳어졌으며, 사회구조적 문제에 불만을 제기하기보다 약한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배제를 강화하는 식의 행태가 두드러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021·22 국제앰네스티 연례인권보고서’를 발표하며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는 데 명분이 집중되면서 기존 불평등에 맞서거나 소외집단 보호를 위한 노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했다고 이같이 밝혔다.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제앰네스티 2021/22 연례인권보고서 기자회견에서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
코로나19로 선명해진 구조적 차별…젠더 폭력 여전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에서는 코로나19가 2년 넘게 이어진 팬데믹 속에서 배제되고 차별받는 이들이 늘었다”며 “이주노동자에게 코로나 진단 검사를 강제하거나 재난지원금에서 이주노동자를 배제하는 등 차별적 조치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여성 인권 부문에서는 형법상 ‘낙태죄’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작년 1월을 기점으로 임신 중지가 비범죄화된 것은 진일보한 일이지만, 입법 공백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앰네스티는 “특정 주수를 제한하는 방식부터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까지 다수의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된 상태로 남아 의료 제공자 간 혼란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특히 젠더를 기반으로 한 폭력이 계속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국제앰네스티는 “트랜스젠더는 모든 영역에서 혐오와 차별에 노출돼 있는데 지난해에만 적어도 3명의 트랜스젠더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현재 대법원의 성별정정 지침에는 여전히 생식능력 제거 수술 요건이 포함돼 있고,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계속 허용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군과 해군 등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며 “이는 군의 인권 사안이자 젠더에 기반을 둔 인권문제까지 더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동자 인권 부문에서는 과중한 업무량과 보호장치 결핍, 전자상거래 기업의 심각한 경쟁 등으로 택배노동자의 과로에 주목했으며,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은 수많은 착취사례로 비판을 받았다고 짚었다.

수년째 요구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국회에서 표류하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해선 한국이 2030년까지 배출량을 2018년 수준에서 40%를 줄이겠다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국제 권고에 미치지 못해 기후비상사태 대응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일부 상황이 진전된 인권 사안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고착화되거나 구조·제도적으로 차별이 있던 곳에서 차별이 더 커졌다”며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사회구조적 문제에 불만을 제기하기보다는 나보다 약한 사람과 집단을 향한 혐오와 배제가 강화되는 패턴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제앰네스티 2021/22 연례인권보고서 기자회견에서 양은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팀장이 북한 인권 현황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
北, 건강·식량·표현의 자유 등 전반적 인권 상황 ‘악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북한은 봉쇄 정책을 강화해 격리 주민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등 인권 상황이 크게 후퇴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앰네스티는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되면서 북한 주민의 이동 자유, 건강권, 식량권, 표현의 자유 등은 심각하게 제한됐다”며 “국경 봉쇄 정책으로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인은 최소 63명으로, 공식 기록이 공개된 2003년 이래 가장 적은 수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백신 불평등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국제사회에서 부유한 국가가 부스터샷을 맞을 동안 저소득국가는 4% 수준만 백신을 접종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백신의 분배는 고르게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의 경우 북한 정부가 코백스(COVAX·국제 백신 공동 구입 프로젝트)의 여러 차례 제안에도 부작용 등의 이유로 백신 지원을 거부했다고 국제앰네스티는 설명했다.

양은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팀장은 “지구상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이루지 못한 국가 두 곳 중 한 곳이 북한인데, 이곳 주민은 백신 선택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접종에서 소외됐다”며 “코로나 확산 차단을 위해 많은 이들이 충분한 양의 식량을 지원받지 못한 채 격리 조치 됐는데 사실상 감금과 다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북한 내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심각하게 제약되고 있고, 피구금자에 대한 처우는 강제노동, 부실한 식사와 의료, 언어폭력 등으로 여전히 가혹한 수준이며, 북한 당국이 부정하는 정치범수용소도 최대 12만명에 달하는 수감자가 있고, 4곳이 운영되고 있다고 국제앰네스티는 전했다.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제앰네스티 2021/22 연례인권보고서 기자회견에서 에멀린 길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 부국장이 국제 인권 현황에 대해 온라인으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
아울러 국제앰네스티는 미얀마·아프가니스탄·홍콩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도 여러 국가가 전면적인 인권 위기에 내몰렸다고 설명했다.

에멀린 길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부국장은 “지역 내 여러 정부가 불법적인 구금 등 인권탄압에 대해 코로나19 팬데믹을 명분으로 내세웠다”며 “그중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 군부에 책임을 묻지 못하고, 강대국 등 국제사회에서 대응하지 않자 결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명분을 주게 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각국 정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분쟁에 대해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해서 여러 국가가 신속하게 보호조치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미얀마 난민에 대해서도 국제사회는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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