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학생들 사이에서 문제와 정답이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선생님들이 관련 학생을 징계한 뒤 시험문제를 모두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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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적지 않은 학생들은 꽤나 당황했었다. 미리 문제와 답을 알고 이를 달달 외었다가 곤혹을 치른 것이다. 공부도 안하고 성적을 잘 받겠다고 생각했으니 혼쭐이 나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양심과 시험점수를 교환하려했으니 당연한 대가를 치렀다고 볼 수 있다.
대학가의 집단 부정행위를 보면서 교육계 원로들의 교육방식이 떠올랐다. 2018년 광운대 총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천장호 광운대 전자공학과 석좌교수는 35년간 무감독 시험을 치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모든 과제물과 시험답안지에 학생 본인이 직접 ‘정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라고 쓰고 서명토록 했다. 시험이나 과제물은 이를 바탕으로 학생 양심에 맡겼다. 학생들에게 지식뿐만 아니라 정직과 신뢰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인천의 제물포고는 65년간 무감독 시험을 이어왔다. 자율과 양심을 강조한 고 길영희 초대 교장의 뜻을 반세기 넘게 이어온 것이다. 첫 시작은 1956년 1학기 중간고사였다.
제물포고의 무감독 시험도 한 때 위기를 맞았었다. 1990년대 말 한 학생이 친구에게 답을 알려주는 부정행위를 저지르면서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서다. 하지만 학생들 중에는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고 결국 학교 측은 이를 유지하기로 했다. 당시 부정행위에 가담한 학생도 전학을 가면서 자신의 과오로 학교전통이 무너지지 않길 바랐다고 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수업이 확산되면서 무감독 시험의 의미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교육계 원로들이 무감독 시험을 유지했던 이유는 교육적 효과 때문이다. 시험의 결과뿐 아니라 과정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의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정직하게 시험을 치러 얻은 성적이라야 의미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대학은 지식 전달에 더해 전인적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교육계 원로들이 무감독 시험을 통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가치를 되새겨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