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사무직 노조 출범..'고용중시' 노사문화 전환점될까?

현대차그룹 사무직노조 설립 신고..29일경 공식 출범
네이버 시작해 SK·LG 이어 현대차까지 사무직노조 '붐'
"2030세대 평생직장 개념 희미..당장 보상이 더 중요"
勞 "기존 노동운동과 배치..社 "숙제 늘어난다" 우려
  • 등록 2021-04-26 오후 5:45:30

    수정 2021-04-26 오후 9:38:53

[이데일리 이승현 이대호 배진솔 기자] 전통적으로 대기업 생산직 중심으로 움직여온 대한민국의 노동조합 문화가 전환점을 맞았다. 현대차와 LG 등 주요 기업에서 그동안 노조 활동에서 소외돼 온 사무직, 특히 20~30대가 주축이 된 노조 설립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들은 특히 공정한 보상 시스템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기존 노조가 중요시하는 정년연장 등 일자리 보장과는 거리가 있다. 향후 사무직 노조가 기존 노사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무·연구직 노조가 26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하며 출범을 공식화했다. 사진은 현대차그룹 사무직 노조 설립신고서 들어 보이는 이건우 노조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사무직 노조, IT업종서 출발해 제조업까지 확대


2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동조합’은 이날 오전 9시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노동조합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현대차그룹 사무직 노조는 설립 필증이 교부되는 29일 공식 출범하게 된다.

현대차그룹 사무직 노조 측은 “사무연구직의 경우 우리 임금과 근로조건에 대한 건의사항과 불만에 대한 소통창구가 없었다”며 “회사 역시 우리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경청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노조 설립의 이유를 밝혔다.

현대차그룹 사무직 노조는 우선 산업별 노조 형태로 운영하다가 향후 계열사별 조합원 수가 늘어나면 하위 지부를 두는 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현대차에서 조합원이 일정 규모 이상 모이면 현대차에 지부를 설립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같은 사무직 노조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IT(정보기술)업종에서부터였다. 2018년 네이버와 카카오, 넥슨이 노조를 설립했고 이후 스마일게이트, 엑스엘게임즈, 웹젠에서 잇따라 노조를 출범했다.

네이버 노조 지회에 따르면 네이버 전체 자회사 및 계열사를 대상으로 노조 가입을 받는다. 현재 2400명 이상이 가입해 있다. 전사 직원 4명 중 1명이 노조원에 이름을 올린 셈이다. 네이버 노조는 지난달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해 “매년 최고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나 직원들에 대한 보상은 동일하게 부여하면서 임원들에 대한 보상액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며 ‘상대적 박탈감’과 ‘경영진 불신’ 등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넥슨이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800만원 일괄 인상을 깜짝 발표한 배경엔 경영진의 결단과 함께 노조의 적극적인 의견 제시도 있었다.

사무직 노조운동은 제조업 기반의 업종으로도 이어졌다. 2018년 SK하이닉스가 사무직 노조를 설립했고, LG전자도 올 3월 사무직 노조가 공식 출범했다. 현대중공업과 금호타이어, 넥센타이어에서도 사무직 노조가 생겼다.

“사무직 노조도 강성될 가능성 있어 기업 부담될 것”

기업들에서 사무직 노조가 속속 만들어지면서 우선 노조 문화의 변화가 예상된다. 기존 생산직 노조 중심 문화에서 소외돼 있던 사무직들이 목소리를 내게 됐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공정한 성과 보상 시스템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와 현대차에서 사무직 노조가 만들어진 계기도 ‘성과급 논란’에서 출발했다.

기존 노조와의 가장 큰 차이는 장기근속과 정년보장 등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본급 인상보다는 전년도 회사 수익에 대한 공정한 보상 시스템 마련이 가장 큰 목표다. 한 사무직 노조 관계자는 “2030세대에겐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희미한 만큼 장기근속에 따른 혜택보다는 지금 당장의 성과보상이 더 중요하다”며 “이런 점에서 고용보장이 중요한 기존 생산직 노조와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기존 생산직 노조와의 노노갈등 가능성도 나온다. 현대차에서는 기존 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노선을 걸으면서 자신들과 선긋기를 하고 있는 사무직 노조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2030세대 중심의 사무직 노조가 기존 노조와 방향이 다르다는 점에서 임단협 협상과정에서 이견을 보일 수 있어 (기존 노조가) 우려하고 있다”며 “특히 사무직 노조가 주장하는 능력중심의 성과급제는 기존 노동운동이 추구해온 연대를 통한 노동자 보호란 방향과 배치되는 것이라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기존 노조와 사무직 노조가 주장하는 바가 다르면 사측이 풀어야 할 숙제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노사관계가 더 꼬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노조간 입장이 다를 경우 사측의 교섭력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사무직 노조의 주장을 보면 기존의 연공서열식 문화를 탈피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노조의 특성상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조직을 확대하기 위해선 강경한 입장을 낼 수밖에 없어 사무직 노조 역시 사측에 무조건 우호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언급했다.

반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회사의 경영상황을 잘 아는 사무직 노조가 안착되면 기존 생산직 노조가 만들어온 대결적 노사관계가 상생하는 관계로 전환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현대차그룹 사무직 노조는 향후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LG전자와 금호타이어 등 타 기업의 사무직 노조와 연대하는 안도 추진할 예정이어서 거대 규모의 사무직 노조연대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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