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는 “정년을 채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새로 들어갈 자리가 거의 없어 임금피크제 대상 대부분은 희망퇴직을 택한다”며 “당장 갈 곳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요즘 시중은행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경기 침체와 맞물려 은행 경기가 예전 같지 않다 보니 사실상 정년을 채우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만 55세가 되면 짐을 싸야 하는 게 현실이다. 올해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정년을 채우기 전에 스스로 짐을 싸야 하는 ‘조용한 칼바람’이 은행권에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임금피크제 대신 희망퇴직
현재 은행 정년은 만 58세다. 그러나 이 나이까지 정년을 채우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임금피크제를 운용하는 은행에선 만 55세가 되면 김씨와 같은 선택지를 받지만 대부분 희망퇴직을 택하기 때문이다. 연봉이 깎이는 대신 은행에 남는 쪽을 택해도 만 60세까지 회사에 남아 있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은행 수익은 점점 줄고 있는 데다 인터넷거래처럼 비대면거래는 느는 추세여서 은행으로선 인력 효율화가 더 시급한 상황”이라며 “이렇다 보니 임금피크제를 선택해도 이들에게 적절한 업무를 주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중에선 국민·우리·하나·외환·기업은행이 임금피크제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에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나(59명)·외환(113명)·기업은행(160여명)의 경우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 대부분이 희망퇴직을 택했다. 우리은행은 만 55세 직원 250여명 중 절반 이상인 130여명이 은행을 떠났고 국민은행은 200여명 중 88명이 짐을 쌌다. 이들 은행에선 만 55세 직원 780여명 중 70%인 550여명이 정년을 채우기도 전에 현역에서 물러난 것이다.
올해도 사정은 비슷하다. 특히 올 들어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은 은행들도 연초부터 인력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비정기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 신한은행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농협도 지난해 319명에 대해 희망퇴직을 실시한 데 이어 올해 269명을 희망퇴직시켰다. 다만 지난해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했던 외국계은행은 올해 희망퇴직에 실시하지 않을 예정이다.
임금피크제를 운영하는 은행에선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희망퇴직이 이뤄질 것으로 금융권은 내다보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 정년이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연장되지만 은행 대부분 임금피크제 적용 시기가 만 55세로 맞춰져 있어 올해 대상자들은 정년 연장 혜택을 받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만 55세가 된 직원들은 당장 올해부터 희망퇴직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데다 내년 정년이 연장돼 임금피크제 적용시기가 늦춰진다 해도 은행 입장에선 이를 소급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며 “이 때문에 임금피크제 적용시기를 놓고 노사간 대립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