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그간 무조건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던 ‘보류지’의 몸값도 떨어지고 있다. 수차례 유찰을 겪으면서 직전 가격보다 1억원을 낮추는 보류지도 등장했다. 보류지는 도시정비 조합에서 누락·착오·소송 등을 대비해 분양세대 가운데 일부를 분양하지 않고 남겨두는 물량을 말한다. 전체 세대 수의 최대 1%까지 보류지로 남겨놓을 수 있고 이는 조합 의무사항이다.
보류지 분양은 만 19세 이상 개인 또는 법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조합에서 정한 최저가격 이상으로 입찰가를 제출해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이 낙찰받는다. 공개경쟁입찰 방식이어서 청약통장도 필요 없다. 조합원 매물이기 때문에 전매 제한도 없다. 따라서 일반 청약과 달리 ‘아는 사람만 아는’ 로또로 통했다. 보류지는 그동안 입찰에 성공하기만 하면 무조건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다며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보류지 몸값 낮추기’가 비수도권부터 시작해 서울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 서울 여의도 63스퀘어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의 아파트 밀집지역.(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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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응암제2구역 재개발조합은 지난 17일 ‘녹번역 e편한세상캐슬’ 보류지 매각공고를 냈다. 전용면적 59㎡의 최저 입찰가격은 9억3000만원으로 지난 4월 당시 매각공고의 10억3000만원보다 1억원 낮아졌다. 4월부터 4차례에 걸쳐 매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이번에는 가격을 낮춘 것이다. 특히 직전 최고가였던 지난해 5월 매매가 11억8500만원 보다는 2억5000만원이나 떨어졌다. 지난 4일 매매계약을 체결했던 9억5000만원 보다도 2000만원 더 저렴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매각이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보류지는 지하철 녹번역과 거리가 있고 백련산 쪽으로 있어 단지 내에서 아주 좋은 입지는 아니다”며 “현재 같은 평형대로 9억원 정도에 급매물이 나와 있다”고 말했다.
태릉 해링턴플레이스(태릉현대아파트 재건축조합)도 7차례에 걸쳐 보류지 12가구 매각을 추진했지만 여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입찰 가격을 내렸다. 조합은 전용 84㎡(2가구)의 아파트 입찰 가격을 13억원에서 12억7400만원으로 내렸다가 이번에는 12억6000만원으로 낮췄다. 전용 59㎡(5가구)도 9억3000만원에서 9억원으로, 74㎡(5가구)도 11억원에서 10억6000만원으로 내렸다.
주택 시장이 좋지 않다 보니 결국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입찰 가격을 큰 폭으로 내려 매각한 사례도 있다. 수색13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의 ‘DMC SK뷰 아이파크 포레’ 보류지 22가구다. 이 단지 최저 입찰가격은 59㎡ 7억2550만~8억450만원, 76㎡ 8억7000만원, 84㎡ 9억4000만~9억5000만원, 102㎡ 9억7900만원이다. 현재 이 아파트 분양권 호가는 59㎡가 9억3000만~12억5000만원, 84㎡은 13억5000만원 수준이다. 전용 59㎡는 최종 낙찰가격은 8억1100만~9억6000만원 수준이다. 이어 84㎡도 9억8600만~12억원 가량인데 분양권 호가와 비교해 큰 차이를 나타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조합 입장에서도 추가 하락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가격이 더 내려가기 전에 서둘러 털자는 심리가 커질 수 있다”며 “결국 보류지도 시장을 바라보는 수요자와 공급자의 시각이 작용한다는 점에서 시장의 큰 흐름을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