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EU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기업결합 심사를 불허하면 조선사 빅딜은 수포로 돌아간다. 조선과 항공 등 다국적 기업은 M&A를 진행할 때 주요국 경쟁당국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총 6개국 중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중국으로부터 무조건 승인을 받았지만, 기업결합 심사는 심사국 만장일치라 EU 승인도 필요하다. EU는 늦어도 20일이나 그 이전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기업결합 심사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두 조선사의 합병 불발에 무게가 실리면서 이동걸 회장은 대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3년여를 끌어온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민영화 작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해서다. 이동걸 회장은 2019년부터 대우조선 지분 55.7%를 현대중공업에 현물출자하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해왔다. 산업은행은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 부실화된 대우조선을 떠안아 20여년 넘게 관리해오고 있다. 현재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지분 55.7%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문제는 현대중공업 이외의 원매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국내조선사 ‘빅3’ 중 삼성중공업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현실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 마찬가지로 독과점 이슈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 세계 선사가 발주한 대형 LNG 운반선 75척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30척, 삼성중공업이 22척, 대우조선이 15척을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을 합친 물량이 45척(60%)에 달하는데,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을 합친 물량도 35척(47%)에 이른다.
일각에선 대우조선에서 LNG선 사업을 분리한 뒤 나머지만 현대중공업과 결합하는 방식을 제기한다. 독과점 이슈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이다. 하지만 LNG선이 고부가가치 업종인데다 성장가능성이 큰 ‘알짜 사업’으로 대우조선이나 현대중공업 모두 포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동걸 회장은 이르면 EU 경쟁당국이 두 조선사의 합병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대로 관련 입장과 대안 등을 언급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무산될 경우를 대비해 플랜 B, C, D를 모두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어 구체적으로 어떤 묘수를 갖고 있을지 주목된다. 금융당국을 포함한 정부 역시 ‘EU 발표’에 맞춰 관련 입장 등을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관련 부처와 협의해 정부 전체의 입장을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