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는 16일 시장감시위원회를 열고 메릴린치 서울지점에 1억7500만원의 제재금을 부과키로 했다. 지난 3월 시감위 자문기구인 규율위원회에서 메릴린치에 대한 제재금을 통과시킨 뒤 시감위만 네 번 연 끝에 내린 결론이다.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를 중개한 증권사가 제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고빈도 매매가 아니다. 대규모 자금을 동원한 허수성 주문으로 시세를 조정할 가능성이 높게 구조가 짜인 알고리즘 매매를 중개했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아직까진 멸치 꼬리를 잡은 수준에 불과하다. 향후 관건은 시타델 증권이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다. 거래소는 지난 달 중순 관련 자료를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에 넘겼다.
메릴린치, 8개월간 850억 허수성 주문 중개
시타델 증권의 알고리즘 매매는 최우선 매도 호가 잔량을 소진해 호가 공백을 만든 후 일반 매수세를 유인하고 그 다음 보유 물량을 매도해 시세 차익을 얻은 후 기존에 제출한 허수성 호가를 취소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구조다. 이로 인해 개인투자자들은 매수 상위 회원에 ‘메릴린치’가 뜨면 외국인이 산다고 생각해 추격 매수했다가 된서리를 맞는 경우가 많았다. ‘멸치 떴다’라는 은어가 생길 정도로 원성이 자자해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에 메릴린치를 비난하는 글들이 쏟아지기도 했었다.
거래소는 지난해 6월 시타델 증권의 주문이 시장감시규정의 허수성 주문에 해당하는 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계좌 및 매매 분석을 실시하고 그 해 10월엔 메릴린치 증권 서울 지점에 대해서도 감리를 벌였다. 그 결과 메릴린치가 시장감시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시장감시 규정에 따르면 위탁자는 거래 성립 가능성이 희박한 호가를 대량 제출하거나 이를 반복 정정, 취소해 시세에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것이 금지돼 있고 회원사 역시 이를 중개해선 안 되는 시장감시 규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제재 조치가 직접주문전용선(DMA: Direct Market Access)을 이용한 알고리즘 매매 주문의 수탁 행위에 대해 회원사, 즉 증권사의 주의를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시타델 증권, 시장질서 교란 행위 금지 위반 소지
시타델 증권의 알고리즘 매매는 자본시장법 제178조2항 시장질서 교란 행위 금지 위반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형사처벌과 동시에 과징금 부과 등 행정 제재가 가능하다. 시타델 증권의 알고리즘 매매는 2015년 중국에서도 문제가 돼 관련 거래를 중개한 증권사들이 제재를 받기도 했다.
▶[용어설명]직접주문전용선(DMA)=주문집행의 소요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투자자가 거래소 전산시스템에 직접 주문(다만, 회원 명의로 주문)을 전송하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