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이 정당의 주인? 여의도 뒤흔드는 당원 민주주의의 역습

李 반대 의원들에게 `문자폭탄` 보내는 野 당원
당대표 선거에 국민여론 반영 안한 與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에 팬덤도 이용돼
전문가 "당 차원에서 주의주는 등 조치 있어야"
  • 등록 2023-03-08 오후 6:26:27

    수정 2023-03-08 오후 7:27:23

[이데일리 이수빈 기자] “대한민국 주인은 국민이고 국민의힘 주인은 당원이다.”(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당내 민주주의, 즉 당원이 주인인 제대로 된 민주정당을 만들어야 한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약 80만명과 100만명 당원이 가입된 거대 정당이다. 이들은 최근 정당 운영에 지도부의 결정을 따르는 탑다운(Top-down) 방식에서 당원들의 의견을 당 운영에 반영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강성 당원들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자들로 구성된 수박깨기운동본부 회원들이 3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이 대표의 체포 동의안 부결 관련 이탈표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수박’ 깨는 민주당, 국민 여론 안 듣는 국민의힘

8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 이후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30표 이상 무더기 이탈표가 나오자 이 대표 지지층은 가결 또는 기권·무효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하는 작업에 나섰다. 이들은 직접 의원실에 전화하고 의원 개인 연락처로 문자를 보내며 어떤 표를 던졌는지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이재명 대표의 결단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연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기자회견장을 대신 예약해줬다가 곤욕을 치렀다.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항의 전화, 문자가 빗발친다. 심지어는 지역사무실에 찾아와 항의하는 여성들도 있다”고 밝혔다.

이들 강성 지지층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은 본인들의 의사기 원내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지지자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껴서 문자 폭탄을 보낸다는데 이해가 안된다”며 “의원들이 특정 의견 선택을 종용하면 오히려 반감을 갖게 된다”고 전했다.

민주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개딸’과 유튜버들이 당을 망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목소리를 내는 지지층 말만 따르다 보면 결국 당은 강성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러면 당이 망가진다”며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른바 ‘태극기 부대’ 말만 듣다 보니 당이 강성으로 가서 중도층을 다 잃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를 ‘당원투표 100%’로 선출했다. 정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기존 당원투표 70%, 국민여론조사 30%로 돼 있던 규정을 당원 100%로 변경했다고 발표하며 “당권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전당대회 선거운동이 일반 국민보다는 당원들에게 맞춰져 이뤄지다보니 네거티브로 흘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윤심’(尹心,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선거 핵심으로 부상하며 일반 여론과 동떨어진 선거를 치렀다는 시각도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투표가 진행중인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당직자가 모바일을 통한 투표를 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전문가 “의원들 `표의 노예` 만드는 셈…민주정당, 다른 의견 존중해야”

전문가들은 당지도부 소수의 결정이 아닌 ‘당원 민주주의’를 통해 정당이 운영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면서도 현재 벌어지는 양상은 당원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당이 강성 지지층의 의견에 집중할수록 당내에 다양한 목소리는 사라지고 결국 ‘강경 일변도’로 흘러 대화와 토론 등 정치는 실종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결국 당 차원에서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현 상황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를 부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불관용의 모습을 보인다”며 “이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식으로 `길들이기`에 나서면 의원들은 표의 노예가 된다”며 “국민의 의사를 위임받은 의원들이 결국 국가의 이익 전체를 고려하기 어렵고 소수의, 목소리가 크고, 결집이 잘 되는 사람들의 이익에 편향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당 차원에서 인격모욕적 발언 등에 주의를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당의 목표는 결국 권력을 잡는 것이다. 이를 위해 누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당원의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강성 당원 위주로 구성되면 결국 중도층과 멀어진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우리 정치가 대화나 타협, 협치는 사라지고 형해화된 상황이기 때문에 ‘팬덤’이 정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라며 “양당이 ‘적대적 공생’에서 벗어나야만 팬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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